개와 늑대 이렌 네미롭스키 선집 4
이렌 네미롭스키 지음, 이상해 옮김 / 레모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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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우크라이나에는 유대인 거주 지역이 따로 있었다. 유대인 거주 지역은 또 다시 주민들의 경제 수준에 따라 세 구역으로 나뉘었다. 아다의 아버지는 하층민 거주 지역인 게토 출신으로, 열심히 일한 덕분에 서로 다른 구역을 오가는 중개인의 지위에 올랐다. 아다는 그런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부유한 유대인들의 눈에 아다의 아버지는 여전히 게토 출신 하층민일 뿐이다. 


아다는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아버지가 죽고, 그의 가족들이 아다의 집으로 찾아온다. 그때부터 아다는 작은 아버지의 아내인 라이사 숙모와 그의 딸 릴라, 아들 벤과 함께 산다. 나이가 비슷한 벤과는 친남매처럼 매일 같이 놀고 항상 붙어 다닌다. 해리를 처음 본 날도 벤과 함께였다. 유대인 가문 중에서 로스차일드 다음으로 부자로 소문난 솔로몬 시너의 손자 해리 시너를 처음으로 본 날. 그날 이후 아다는 해리만을 사랑한다. 


아다를 좋아하는 벤은 아다가 해리를 좋아하는 것이 싫다. 부자인 해리는 가난한 아다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이 싫다. 이들의 삼각관계는 파리에서도 이어진다. 다만 이때는 해리의 마음에 변화가 생긴다. 우크라이나에선 부유한 유대인으로 떵떵거리며 살았던 해리는 프랑스에선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은근한 배제와 차별을 당한다. 그제야 비로소 자신을 무시하는 프랑스인들보다 한결같이 사랑해 주는 아다가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문제는 해리에게는 아내가 있고 아다에게도 남편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아다의 남편은 사촌인 벤이다. 사실 아다와 벤의 성도 시너이기 때문에, 아다와 벤, 해리는 모두 친척 관계다. 벤은 해리보다 먼저 아다를 사랑했고, 친척이기 때문에 외모도 닮았는데,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자신보다 해리를 좋아하는 건 잘못이라고 아다를 설득한다. 하지만 아다가 해리를 좋아하는 건 단지 부유해서만은 아니다. 그러나 해리가 부유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사랑할 수 있었을까. 


이렌 네미롭스키의 소설 <개와 늑대>는 세 남녀의 엇갈리는 사랑을 그린 로맨스 소설로도 훌륭하지만, 20세기 초 유럽의 유대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사료로서도 가치가 상당하다. 소설에서 아다네 가족은 점점 더 심해지는 포그롬(유대인 박해)을 피해 프랑스로 이민을 가지만, 파리에서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소외당하고 차별받으며 힘든 생활을 한다. 도피와 방랑이 일상이기 때문에 돈과 물질을 숭배하고 혈연에 집착한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다는 개처럼 길들여진 남자 해리도, 늑대처럼 자유로운 남자 벤도 아닌 갓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는다. '그림, 자식, 용기. 이거면 살 수 있어. 그것도 아주 잘 살 수 있어.'라고 다짐하는 아다의 모습이 너무나 밝고 희망찬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렌 네미롭스키는 1940년 이 소설을 출간하고 1942년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했다. 삶을 지속할 수단과 목적과 의지가 있어도 처한 환경이 부적합하면 무용해진다는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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