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이주란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1월
평점 :

지영은 얼마 전 고등학교 앞에 있는 작은 서점에서 일을 시작했다. 학원 강사로 일할 때보다 월급은 적지만 주인 부부가 친절하고 손님들도 다정해 일하는 마음이 훨씬 편하다. 지영은 엄마, 세상을 떠난 언니가 남긴 조카딸 송이와 함께 산다. 남들이 보기에는 가난하고 불완전해 보일지 몰라도 지영은 지금이 좋다. 좋아하는 작가의 낭독회에 가고, 휴일엔 조카와 서점에서 책을 사고, 이모가 만든 떡볶이가 제일 맛있다는 칭찬을 듣는 삶이 행복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이주란 작가의 소설집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은 오랜만에 편한 마음으로 읽은 책이다. 일단 표제작 <한 사람을 위한 마음>부터가 내용이 잔잔하고 편안하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지영의 상황은 그저 좋다고만 볼 수 없다. 언니가 조카를 남기고 죽었고, 애인과 헤어졌고, 직장을 그만뒀고, 세 식구의 생계 부양자는 오로지 자신이다. 그러나 지영은 상실에 아파하기보다 상실의 고통을 함께 나눌 가족이 있음에 감사하고, 가난에 주눅 들기보다 적은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음에 행복해 한다. 이런 태도를 가진 인물이 은근히 드물고 귀하다.
이 소설집은 전반부에 비교적 평이하게 읽히는 단편들이 실려 있고 후반부에 은근히 독하고 어떻게 보면 어두운 내용의 단편들이 실려 있다. <넌 쉽게 말했지만>, <멀리 떨어진 곳의 이야기>, <일상생활>은 일기처럼 읽힌다. 출근하기 싫다, 퇴사하고 싶다, 연애가 안 풀린다, 가족이 말썽이다 등 어떻게 보면 SNS나 인터넷 게시판에서 숱하게 보는 넋두리와도 비슷하다. 그 때마다 맛있는 것 먹으면 기분이 풀리고 한동안은 버틸 만해진다는 것도 많이 본 흐름이다 ㅎㅎ
<사라진 것들 그리고 사라질 것들>에는 <한 사람을 위한 마음>과 마찬가지로 자매 중 한쪽이 먼저 사망한 설정이 나온다. 남자친구를 따라 벌초를 하러 간 이야기를 그린 <준과 나의 여름>과 빵집이 배경인 <그냥, 수연>도 잔잔한 분위기인데, <나 어떡해>와 <H에게>는 내용이 무겁다. 앞의 단편들이 상실이나 충격 뒤에 오는 애도와 회복을 그렸다면, 뒤의 두 단편은 상실과 충격의 시기를 그려서 상대적으로 더 어둡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