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같은 곳에서
박선우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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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을 다닌 회사를 퇴사하고 누나 집에 얹혀 살고 있는 '나'는 누나에게 곧 손님이 온다는 말을 듣는다. 손님은 누나가 전부터 알고 지낸 오픈리 게이로, 애인과 헤어진 후 생업을 접고 외국을 여행하다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온 것이라고 한다. 누나는 손님에게 잘해주라고 신신당부하지만 '나'는 왠지 그 남자에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첫 만남부터 어색한 건 물론이고, 친동생인 자신보다 누나한테 더 싹싹하게 구는 그의 태도가 점점 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다 둘 사이에서 완충재 역할을 해주던 누나가 일 때문에 집을 떠나게 되고, '나'는 그 남자와 단둘이 집에 남아 긴 밤을 보내게 된다. 어색함을 달래려고 열심히 들이부은 술기운 탓이었을까. 시종일관 싹싹하고 자못 명랑해 보이기까지 했던 남자가 '나'의 앞에서 울음을 터뜨린다. 울고 싶지만 울지 않고 잠든 '나'는 이튿날 남자가 떠난 걸 알게 된다. 울고 싶을 때 우는 남자와 울지 않는 남자의 차이는 뭘까. 울지 않는 쪽이 사실은 더 울고 싶은 건 아닐까. 


박선우의 소설집 <우리는 같은 곳에서>에는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 중에 첫 번째로 실린 <밤의 물고기들>이 나에게는 가장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보면 누나의 손님과 하룻밤을 보냈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사건이랄 게 없는 소설이다. 그런데도 인상적이었던 건 화자인 '나'가 드러낸 감정보다 드러내지 않은 감정이 더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내심 꺼렸던 그 남자를 직접 만난 후 그 남자가 예상보다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그뿐이다. 


이어지는 단편 <우리는 같은 곳에서>도 어떻게 보면 인물들의 관계가 비슷하다. '나'의 아내는 대학교 때 잠깐 사귀었고 지금도 계절마다 한 번은 만나는 '나'와 영지의 사이를 의심한다. 그러다 우연히 영지를 만나 영지와 '나'가 자신이 의심하는 사이가 아니란 걸 알게 되지만 그뿐이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좋은 사이가 되는 건 별개라는 걸 우리는 언제부터 알게 되는 걸까. 그런 한계는 누가 어떻게 만드는 걸까. 소설집을 읽는 내내 공감이 되면서도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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