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만세 매일과 영원 6
정용준 지음 / 민음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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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날 때부터 이야기꾼인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이 글을 쓰면 소설이 되고 명작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십 년 이상 한국 문학, 외국 문학 가리지 않고 수많은 소설을 꾸준히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타고난 이야기꾼도 분명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 어쩌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서 -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마도 정용준 작가님은 후자에 속하지 않나 싶다. 


2022년 민음사 '매일과 영원' 시리즈로 출간된 <소설 만세>는 2009년 작품 활동을 시작해 <프롬 토니오>, <내가 말하고 있잖아>, <선릉 산책> 등 다수의 소설을 발표한 소설가 정용준의 첫 에세이집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소설가가 되기 위해 해온 노력과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경험하고 생각한 것들, 중견 소설가로서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소설에 대한 애정과 각오, 의지 등이 담겨 있다. 


저자는 어릴 때 말더듬증이 있었다. <내가 말하고 있잖아>의 주인공 소년처럼 말더듬증 때문에 남들 앞에서 말하기를 꺼렸고, 자연히 남이 말하는 걸 보거나 자기처럼 말하지 않는 사람들을 눈여겨 보게 되었다. 그러다 소설의 세계를 알게 되었고,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소설을 만나 더 나은 입술을 얻었다." 20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해, 오직 소설을 쓰기 위해 2년 동안 인터넷이 되지 않는 방에 칩거할 정도로 지독하게 썼다. 


저자에게 소설은 "단 한 사람의 편에 서서 그를 설명하고 그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다. 소설은 어디까지나 허구이지만, 허구인 그 이야기도 누군가에게는 과거와 미래의 어떤 날 어떤 순간의 현실이고 실제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자신의 소설 속 인물에게 극도의 고통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 놓여 있어도 계속 살아갈 여지를 남긴다. 소설은 끝나도 인물에게는 삶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창작한 허구의 이야기 속 인물조차 함부로 다루지 않는 마음은, 저자가 그동안 읽은 소설과 저자를 가르친 스승들에게서 배웠다. 글은 작가가 쓰는 것인 동시에 독자가 읽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소설가로서 충분히 숙련된 지금도 꾸준히 다른 책을 읽고 공부한다. 배우지 않고는 쓸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한승원, 나희덕, 이장욱, 이승우 등 좋은 스승, 선배를 모범으로 삼고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어떤 소설가들은 자신을 '소설가 000'라고 소개하는 대신 '소설 쓰는 000'이라고 소개한다. 이는 겸양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한때 소설을 썼던 것이 아니라 지금도 소설을 쓰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수식이기도 하다. 저자 또한 자신을 '소설 쓰는 정용준'으로 소개하고, 이 소개 문구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이런 마음, 이런 태도로 살아왔고 써와서 그의 소설이 그토록 좋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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