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같은 글쓰기 -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와의 대담
아니 에르노.프레데리크 이브 자네 지음, 최애영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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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의 글은 솔직하다. 그동안 많은 글을 읽었지만, 아니 에르노의 글만큼 솔직한 글을 본 적이 없다. 그저 솔직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니 에르노는 자신이 과거에 직접 경험한 어떤 사건에 대해, 작가는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에 걸쳐 반추하고 또 반추하면서 그것의 인과 관계와 의미를 분석한다. 아니 에르노의 글이 단순한 정신분석에 그치지 않고 사회학적 글쓰기로서 평가받는 이유다. 


<칼 같은 글쓰기>는 프랑스 태생의 멕시코 작가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가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를 주제로 아니 에르노 본인과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대담집이다. 인터뷰에 앞서 자네는 "일부 독자들로부터 거북함과 몰이해라는 반응을 이끌어낼 만큼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글로 쓰는 이유, 내적 동기를 탐구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는데, 나 역시 아니 에르노의 전 작품을 읽으면서 비슷한 의문을 품었기 때문에 인터뷰의 내용이 매우 기대가 되었다. 


인터뷰 시작에 앞서 아니 에르노는 자신을 작가로 칭하는 것과 자신의 글을 작품으로 칭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밝힌다. 아니 에르노에게 글쓰기 또는 책 쓰기는 '현재 진행형'이지 '완성형'의 활동이 아니다. 아니 에르노는 열여섯 살 때부터 내면일기, 외면일기 등 다양한 형식의 일기를 써왔고, 이를 바탕으로 책을 구상하고 발표해 왔다. 즉, 아니 에르노에게 글쓰기는 일기의 연장 내지는 확장이며, 책의 본문 앞뒤에 날짜를 표기하는 것은 집필 또는 출간 당시의 관점임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다. 


아니 에르노에게 글쓰기는 일기의 연장 내지는 확장이지만, 일기를 그대로 엮어서 책으로 출간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아니 에르노가 글을 쓰는 이유 또는 목적은 지극히 사회적, 정치적이다. 작은 도시 이브토에서 식당 겸 상점을 운영하는 중소상인 계급의 딸로 자란 아니 에르노는 자신이 피지배 계급 출신임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으며, 교육을 통해 지배 계급에 편입된 이방인이라고 느낀다. 아니 에르노는 이러한 인식에 기반해 자신의 경험을 사회적, 정치적인 관점에서 분석하고 연구해 책으로 발표한다.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글이 사회와 성이라는 두 차원에서의 금기를 넘기 때문에 더 심한 거부와 비난을 받는 거라고 설명한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영향은 크게 받았으나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영향은 거의 받지 않았고, (현실과 무관하고 순수 미학만 추구하는) 기존 소설을 거부하는 초현실주의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오직 삶만이 있는 삶. 그 삶은 충분하지 않아요."(208쪽)라는 작가의 말이 다양한 의미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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