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와 빨강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편혜영 지음 / 창비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팬데믹 초기에 전염병을 다룬 책들이 큰 주목을 받았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딘 쿤츠의 <어둠의 눈>, 최진영의 <해가 지는 곳으로> 등이 그랬다. 이 책들을 다 읽어본 건 아니지만, 얼마 전에 읽은 편혜영 작가의 첫 장편소설 <재와 빨강> 속 팬데믹 상황이 실제로 내가 경험한 팬데믹 상황과 가장 비슷했다. 작가가 이 소설을 발표한 건 2010년이고, 소설을 구상하고 쓸 당시만 해도 실제로 전염병이 일어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는데 어떻게 이런 소설을 썼을까. 대단하다. (참고로 내가 읽은 건 2010년에 출간된 초판이 아닌 2023년에 출간된 리마스터판이다.) 


제약회사에서 약품개발원으로 재직 중인 '나'는 파견근무를 발령받고 C국에 있는 본사로 떠난다. 출국과 동시에 감기에 걸린 '나'는 때마침 발생한 전염병과 증상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공항에 격리된다. 이를 시작으로 '나'에게 계속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숙소로 가려고 하니 택시 기사가 그 동네는 위험하다며 가까이 가기를 거부한다. 본사 담당자인 '몰'은 출근 일자가 미뤄졌으니 숙소에 있으라는데, 숙소 상태가 엉망이다. 심지어 트렁크를 도난 당하고, 트렁크에 있던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기기까지 잃어버리면서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된다. 


본국에서의 '나'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아내가 자신의 동창과 바람을 피면서 결혼 생활은 끝이 났고,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면서 직장 생활의 즐거움도 사라졌다. 도망치는 기분으로 C국에 왔다가 모종의 사건으로 진짜 도망자가 되는 '나'를 보면서, 어쩌면 내가 지금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일상도 막상 벗어나면 아쉽고 그리운 소중한 시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또한 지난 3년 간 팬데믹을 겪으며 많은 사람들이 체득한 교훈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통찰력(예지력?)이 놀랍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