꾿빠이, 이상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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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가 2001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꾿빠이, 이상>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동안 김연수 작가의 작품을 여러 권 읽고, 이상과 이상의 아내 김향안(변동림), 구인회 문인들에 대한 지식을 알게 모르게 쌓아서 그런지 처음 읽었을 때보다는 몰입도 잘 되고 내용도 이해가 잘 되었다. (이래서 위대한 작가들이 소설을 여러 번 재독하라고 하나보다.) 


김연수 작가는 이상의 소설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의 이름 '연'에서 자신의 필명을 따왔을 정도로 이상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의 실린 작가의 말에 등단할 때부터 이상에 관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상의 강렬하고 찬란했던 생애 중에서도 김연수를 사로잡은 것은 임종, 정확히는 임종 직후다. 


1910년생인 이상은 1937년 4월 17일 도쿄대학 부속병원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임종 직후 이상의 가족과 친구 등이 이상의 데드마스크를 만들었다는 소문이 있다. 김연수 작가는 이를 이상의 여동생 김옥희가 "오빠의 데드마스크는 동경대학 부속병원 유학생들이 떠놓은 것을 어떤 친구가 국내로 가져와 어머니께까지 보인 일이 있다는데 지금 어디로 갔는지 찾을 길이 없어 아쉽기 짝이 없습니다."라고 한 말로 알게 되었다. <꾿빠이, 이상>은 바로 이 데드마스크의 존재 혹은 소재에 관한 논쟁으로 시작된다. 


소설은 총 세 장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장 '데드마스크'에서 출판전문 잡지사의 기자인 김연화는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사라진 이상의 데드마스크를 자신이 가지고 있으며, 이상 탄생 9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공개할 예정이니 취재를 하러 오라는 서혁수라는 남자의 전화다. 두 번째 장 '잃어버린 꽃'에서 서혁수의 형이자 아마추어 이상 연구자인 서혁민은 이상이 마지막 눈을 감은 도쿄대학 부속병원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그는 이상이 남긴 시를 모방해 '오감도 시 제16호 실화'라는 한 편의 시를 완성한다. 세 번째 장 '새'에서 재미 교포 출신의 이상 연구자 피터 주는 도쿄대학 부속병원에서 발견된 '오감도 시 제16호 실화'의 진위 여부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다. 


첫 번째 장에서 김연화는 데드마스크뿐 아니라 이상 자체가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인물임을 알게 된다. 이상이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평단과 대중의 반응이 극과 극으로 갈렸고, 평론가들 중에도 이상에 대해 '천재'라고 칭송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외국 시의 아류', '미친놈의 개수작'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었다. 조선총독부 건축기사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가난한 문인의 삶을 택한 것, 본명인 '김해경' 대신 아직도 그 의미와 유래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 '이상'이라는 필명을 사용한 것 등도 이상을 따라다니는 아우라 또는 미스터리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이상이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는 "이상을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이상을 믿는 사람에게 이상은 작품뿐 아니라 자신의 삶과 죽음까지도 신비화한 불세출의 예술가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만한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단지 이상뿐일까. 객관적 사실이 부재하는 상황일 때 믿음이나 취향, 습관이나 경험, 심지어는 기분이나 느낌 같은 주관적 판단에 의해 대상을 평가하는 일은 허다하다. 그러한 평가를 잘 이용하면 성공하고, 이용하지 못하면 실패하는 것이 예술가의 삶일 테고...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한 남자가 스스로 만든 '이상'이라는 '마스크'로 원했던 관심과 인정을 받았지만 만족하지 못했고, '마스크 아래 인간' 김해경의 삶과 균형을 맞추지도 못해 끝내 죽음으로 향해간 이야기, 로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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