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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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문학은 서양 문학에서 결코 짧지 않은 역사와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나는 최근에야 윌리엄 트레버와 애나 번스의 작품을 통해 부분적으로 접했다. 그동안 이들의 작품을 읽으며 느낀 건,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이 대체로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점이었는데, 아마도 이는 작품의 배경인 아일랜드의 분쟁이 끊이지 않았던 암울한 역사와 관련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에 반해 클레어 키건의 소설 <맡겨진 소녀>는 아일랜드의 현대사가 자국의 문학 작품에 드리우는 그림자의 농도가 상대적으로 옅은 편이다. 1981년 북아일랜드 분쟁 당시 북아일랜드 감옥에 수감 중이던 아일랜드 공화주의자들이 벌인 단식 투쟁이 직접 언급된 것을 제외하면, 소설의 시대상은 인물들의 대화나 행동을 통해 간접적으로 암시될 뿐이다. 가난한 부부가 형편에 맞지 않게 아이를 많이 가지는 모습을 통해 피임과 낙태를 하지 않는 가톨릭 문화권임을 보여주고, 도박과 음주를 일삼는 남자들과 남의 사생활에 간섭하기 좋아하는 여자들의 모습을 통해 사회적 분위기가 절제나 예의와 거리가 멀다는 걸 알 수 있는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소설의 결말을 읽고 그동안 읽은 모든 소설의 결말 중 가장 강력하고 공포스럽다고 느꼈다. 1998년 북아일랜드 평화협상 이후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종식된 북아일랜드 분쟁과 달리, 충분한 안정과 평안을 제공했던 위탁 가정을 떠나 원가족이 사는 집으로 돌아온 주인공 소녀가 앞으로 겪게 될 정신적 불안과 혼란(어쩌면 육체적, 성적 학대와 폭력도)이 충분히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나는 아빠 차를 타고 킨셀라 부부의 집으로 향하며 소녀가 상상했던 것처럼,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소녀에게 집안일 또는 농장일을 시키고, 구박이나 학대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대화와 장면들을 보면서 소녀의 부모야말로 문제라는 걸 알았다. 이들은 다섯 남매를 양육할 만한 경제적 여유도 없으면서 줄줄이 애를 낳고, 취학 연령도 되지 않은 어린 딸을 잘 모르는 부부에게 맡길 만큼 무책임하다. 특히 아빠는 자식 앞에서 거짓말을 하고, 자식을 맡기는 상대에게조차 무례하게 행동하고, 자식을 두고 가면서 짐도 챙겨주지 않을 만큼 무신경하다. 반면 킨셀라 부부는 낯선 아이가 자기 집 침대에 실례를 해도 질책하지 않고 오히려 민망하지 않게 넘어가 주고, 소녀가 부탁하기도 전에 필요한 옷이나 책, 간식 등을 넉넉히 사준다. (누가 죄인인가, 아니고 누가 부모인가!) 


소녀가 킨셀라 부부의 배려와 친절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을 봐도 소녀가 부모로부터 어떤 양육을 받았을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소녀는 킨셀라 부부에게 맡겨진 후 한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이 편안함이 끝나기를 - 축축한 침대에서 잠을 깨거나 무슨 실수를,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거나 뭔가를 깨뜨리기를"(45쪽) 바랐다. 자신이 (집에서와 다르게) 이토록 편안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서다. 


시간이 흐르고 킨셀라 부부와의 이별을 앞두고 이유식을 먹는 송아지를 구경하던 소녀는 생각한다. "참 이상하다. 엄마 소의 우유를 짜서 내다 팔기 위해서 젖소에게서 송아지를 떼어내 우유 대신 다른 걸 먹인다니. 하지만 송아지는 만족스러워 보인다."(82쪽) 아마도 소녀는 엄마 소의 젖이 아닌 이유식을 먹어도 만족하는 송아지의 모습에서 부모, 형제와 함께 있지 못하고 남의 집에 맡겨진 자신의 신세를 겹쳐보는 한편,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지만 죄책감 때문에 납득하거나 인정하지 못하는(그래서 자신의 감정으로 발화하지 않고 송아지의 감정으로 투사하는) 상태였던 것 아닐까.


잠시나마 소녀에게 친부모보다 더 좋은 양육 환경을 제공했던 킨셀라 부부에게도 약점은 있다. 소녀가 집에 온 첫날 "이 집에 비밀은 없다."라고 단호하게 가르친 것과 달리, 소녀에게 '어떤 비밀'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킨셀라 부부의 비밀을 알고 나서 소녀는 배신감을 느끼고 상처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량한 아저씨와 아주머니에게 그토록 끔찍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그동안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자신을 정성스럽게 돌보면서도 때때로 슬픈 표정을 지었던 이유를 알게 된다. 어떤 비밀은 감당하기 힘든 진실과 선의 또는 순진을 가장한 타인의 악의 또는 무지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생겨나기도 한다는 걸 어렴풋이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킨셀라 부부는 폭력이 난무하고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불합리한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다. 소녀는 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세상에는 이런 어른들도, 이런 삶도 있다는 걸 배운다. 킨셀라 부부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소녀가 이후 킨셀라 부부 같은 어른으로 자랐는지 아니면 자신의 부모와 같은 어른으로 자랐는지는 소설에 나오지 않고 알 길도 없다. 하지만 아빠가 지팡이를 들고 쫓아올 때 킨셀라 아저씨는 자신을 안아주고 킨셀라 아주머니는 자신을 위해 울어주었다는 사실만은 오랫동안 기억하지 않았을까. 그 기억이 소녀를 좋은 어른으로 자라게 했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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