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마지막에 본 것은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마사키 도시카 지음, 이정민 옮김 / 모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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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애호가에게 미스터리를 즐기기에 최적인 계절 같은 건 없다(사계절 다 좋으므로). 하지만 미스터리 소설을 읽기에는 여름만 한 계절이 없다. 난데 없이 시체가 등장하는 도입부부터 뒷골이 서늘해지고, 형사 또는 탐정의 시선으로 용의자들의 진술을 분석하고 허점을 찾다 보면 두세 시간 정도는 순식간에 삭제되고, 범인을 알게 될 즈음엔 더위 따위 이미 까맣게 잊었을 테니 말이다. 일본의 미스터리 작가 마사키 도시카의 신작 <그녀가 마지막에 본 것은>을 읽는 동안에도 그랬다. 


크리스마스이브날 밤, 도쿄 신주쿠구의 경찰서 건너편의 빈 건물에서 노숙인으로 추정되는 50대 여성의 시신 한 구가 발견된다. 두부에 타박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누구한테 맞은 것 같기도 하고, 옷을 벗기다 만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성폭행 목적으로 습격을 당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신원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고 실종자 리스트에서 일치하는 인물도 없어서 난감하던 차에 뜻밖의 일이 발생한다. 시신의 지문이 1년 4개월 전에 일어난 살인 사건 현장에서 채취한 지문과 일치한 것이다. 


이 사건을 맡은 신입 형사 다도코로 가쿠토는 괴짜로 소문난 선배 형사 미쓰야 슈헤이와 함께 사건의 진상을 좇는다. 다도코로와 미쓰야의 관계는 왓슨과 셜록 홈스의 그것 같다. 다도코로는 상식적인 인물로, 사건 해결에 대한 의욕은 높지만 범인을 잡겠다고 선을 넘지는 않는다. 반면 미쓰야는 이상하다 싶은 게 있으면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파고 들고,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면 선을 넘는 행동도 불사한다. 다도코로는 그런 미쓰야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지만, 미쓰야의 그러한 집념과 용기가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보면서 점차 마음을 연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전개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사건 관련자들 대부분이 부부 관계가 안 좋거나 부모 자식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관계가 안 좋은 이유는 대체로 돈 때문이고, 가난이나 불행을 가리기 위해 잘 사는 척, 행복한 척하는 게시물을 SNS에 끝없이 올리는 점도 눈에 들어왔다. 주요 캐릭터들이 여성이고,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는 부부나 가족이 숨기고 있는 문제가 주요 동기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요즘 화제인 <마당이 있는 집>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 소설은 마사키 도시카의 전작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로 시작된 미쓰야&다도코로 형사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2020 게이분도서점 문고 대상작이자 '가족이라는 환상을 집요하게 들추는 미스터리'라는 이 책도 읽고 싶다. 여름이 더 무르익기 전에 읽어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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