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면 유쾌한 할머니가 되겠어 - 트랜스젠더 박에디 이야기
박에디 지음, 최예훈 감수 / 창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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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많이 읽지만 여러 권의 책을 조금씩 돌려 읽는 편이라서, 한 권의 책을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런데 이 책은 한 번에 다 읽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너무 멋있어서. 


저자 박에디는 트랜스젠더 여성, 인권활동가, 군필, 기독교인, 노동자, 바리스타, 엔터테이너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트랜스젠더인데, 사실 그는 자신을 트랜스젠더로만 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나는 한 번도 스스로를 남자라 생각한 적이 없고, 바비 인형을 좋아했고, 치마를 입고 싶었는데 엄마가 못 입게 했어요. 하루하루가 너무 지옥 같았고 살고 싶지도 않았어요. 꼭 여자가 되어 이 몸을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 외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라는 식으로 자신의 과거를 상투적으로 요약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그가 타고난 성별과 원하는 성별이 달라서 고통을 겪은 것은 사실이기에, 책 초반에는 그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스스로 '난 남자가 아니야'라고 생각했지만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어서 괴로웠던 유년 시절을 거쳐 또래들과 조금만 다르게 행동해도 집요한 의심과 추궁, 괴롭힘을 당했던 청소년 시절, 여러 커뮤니티를 전전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던 청년 시절을 지나 트랜지션을 결정한 후 가족들에게 털어놓고 수술을 받고 새로운 몸에 적응하기까지의 과정이 자세히 나온다. 


나는 트랜지션 이후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흥미로웠다. 성소수자가 가족들에게 커밍아웃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알았지만, 트랜스젠더가 트랜지션 이후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가족들로 하여금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이 책을 통해 알았다. 어린 조카들이 삼촌에서 이모가 된 저자를 받아들이는 건 (선물이나 용돈으로 구슬려서) 어떻게 성공했다고 쳐도, 조카들의 친구들이 저자를 '친구 삼촌'으로 불러야 하는지 '친구 이모'로 불러야 하는지 고민하는 장면을 보면서, 이런 문제는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의식 개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트랜스젠더는 외롭고 힘들게 살 거라는 엄마의 걱정과 달리, "오히려 나 자신에게 솔직해진 순간부터 많은 사람과 만나고 그들에게 사랑받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라고 고백한 대목도 좋았다. '진짜 나'를 감추고 사는 대신 '진짜 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성소수자를 환영하는 교회도 알게 되고, 바리스타도 되고, 인권 활동가도 되고, 월드프라이드에 참가하기 위해 해외 여행도 다니는 - 전보다 훨씬 다채롭고 풍성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도. 


책을 읽는 동안 어디서 많이 본 분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찾아보니, 연분홍TV 유튜브 채널 <퀴서비스>의 진행자 '에디'님이셨다! 그때도 재밌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글도 정말 재밌게 잘 쓰시네. 유쾌한 할머니가 될 때까지(되어서도) 재밌는 글 계속 써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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