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대하여 - 박상영 연작소설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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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 작가 하면 남성 성소수자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쓴다는 인상이 있었는데, <믿음에 대하여>를 읽고 실은 사랑보다 '욕망'에 관한 이야기를 써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사랑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인 <대도시의 사랑법>에서도 남성 성소수자인 이십 대 청년들의 먹고 사는 문제가 비중 있게 그려졌고, 두 번째 작품인 <1차원이 되고 싶어>에서는 첫사랑으로 가슴 앓이 하는 와중에도 좋은 대학은 가고 싶고, 친구와의 우정도 지키고 싶고, 부모에게 인정받는 자식이고 싶은 마음이 자세히 그려져 있었다. 


<믿음에 대하여>에서는 그 욕망이 훨씬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요즘 애들>의 남준은 인턴으로 일하는 잡지사에서 정직원으로 전환되기를 기대하지만 수습 기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어서 애가 탄다. <보름 이후의 사랑>의 찬호는 방송국 메인 앵커인 남자친구와 아파트를 장만해 한 집에 살게 된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우리가 되는 순간>의 한영은 대기업 마케팅 부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사내 정치에 휘말려 입장이 난처해진다. <믿음에 대하여>의 철우는 사진작가 일을 그만두고 이자카야를 개업하지만 팬데믹으로 폐업 위기에 처한다. 


이들의 욕망을 보면서 매슬로의 인간 욕구 5단계 이론이 떠올랐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생리적 욕구를 먼저 채우려 하고, 그 다음에 안전 욕구, 사랑과 소속 욕구, 존경 욕구, 자아실현 욕구를 만족하려고 한다. 이 소설에서 인물들은 모두 남성 성소수자로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함께 잘 살고 싶은 욕구가 있다. 하지만 그 전에 생계를 해결해야 하고, 기왕이면 비정규직보다는 정규직,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에서 일하고 싶어서 이직을 거듭한다. 원하는 직장에 들어간 후 연애를 시작하지만, 직장에서 성과를 쌓고 연봉이 올라가고 여윳돈이 생기면서 쇼핑에 탐닉하고 주식, 부동산에 눈 돌리다 애인과 마찰을 빚는다. 


이런 식으로 각자의 욕망을 향해 달려가던 이들은 상사와의 갈등이나 가까운 사람의 죽음, 예상치 못한 팬데믹의 발생 등 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비로소 자신의 현재 생활을 돌아보게 된다. 재미있었던 점은, 어떤 인물은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우울과 허무를 느끼는 반면, 어떤 인물은 (모든 일에는 끝이 있고, 인간은 언젠가 죽으니까) 지금을 즐기자(하고 싶은 걸 하자)는 식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랑도 욕망도 무상하기는 마찬가지인데, 누구는 무상하므로 구애받지 않으려 하고 누구는 무상하므로 더욱 갈구하는 것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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