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본스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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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맨>으로 2018년 부커상을 수상한 애나 번스의 첫 장편 소설이다. <밀크맨>도 좋았지만 <노 본스>가 훨씬 더 좋았는데, 이는 아마도 내가 북아일랜드 분쟁에 대해 잘 모르는데 <밀크맨>에 비해 <노 본스>가 북아일랜드 분쟁을 훨씬 더 자세히, 알기 쉽게 소개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 본스>를 먼저 읽고 <밀크맨>을 읽으면 내용을 이해하기가 한결 수월할 것 같다)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1969년 북아일랜드에서 발발한 분쟁이 1994년 평화협정을 맺으며 일단락될 때까지 1~3년 간격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 소설 같은 느낌은 아닌데, 이는 작가가 분쟁 자체를 다루지 않고 분쟁이 일어나는 공간과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기 때문이다. 소설의 배경인 '아도인'이라는 마을은 작가 애나 번스의 실제 고향이기도 하다. 


어밀리아는 일곱 살 때인 1969년 어느 날 저녁 처음으로 분쟁을 경험한다. 이 때만 해도 분쟁은 어밀리아가 마음대로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놀면 안 되는 정도의 'trouble'에 그친다. 그러나 점차 분쟁이 본격화되고 심각해지면서 사람들이 싸우다 다치거나 죽는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되고, 사람들은 폭력을 일상으로, 평화를 비일상으로 여기게 된다. 이 과정에서 평범한 여자 아이였던 어밀리아는 섭식장애, 알코올 중독을 앓게 되고 끝내는 조현병으로 추정되는 정신병을 얻는다. (가족과 친구, 이웃이 줄줄이 죽어나가고 자신 또한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환경에서 그토록 오래 산다면 정신이 멀쩡한 게 이상하다) 


소설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평화협정 체결 후 어밀리아가 처음으로 친구들을 데리고 동네 밖으로 나가는 대목이다. 오랫동안 전쟁에 시달린 어밀리아의 친구들은 동네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도 사람들이 총부리를 들이대는 줄 안다. 하지만 (당연히) 막상 나가보니 그렇지 않았고, 그들의 동네 밖에 사는 사람들도 그들처럼 생각하는(동네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도 큰일 나는 줄 아는) 걸 알고 어안이 벙벙해진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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