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 듣는 법을 배우는 시간

경청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22년 10월

어떤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 결정적 이유가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 때문이라고 지목되면 어떨까. 김혜진의 소설 <경청>의 주인공 임해수가 바로 그런 상황이다. 잘 나가는 상담 전문가인 해수는 방송에 출연해 한 연예인의 돌발적인 행동에 대해 비판적인 코멘트를 한다. 그로부터 몇 달 후 그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사람들은 해수의 코멘트가 그 원인이라고 비난한다. 

이 일로 해수는 더 이상 방송 출연을 못 하게 되고, 직장에서도 퇴사를 종용 당한다. 남편은 기다린 듯 이혼을 제안한다. 해수는 자신에 대한 비난 여론이 잠잠해지길 기다리며 집에서 두문불출한다. 그러는 동안 해수의 일과는 단순해진다. 오전에는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부치지 않는다. 오후에는 집 주변을 산책하면서 길고양이들을 관찰한다. 그러다 우연히 근처에 사는 초등학생 황세이를 알게 된다. 

처음엔 세이와 길고양이에 관한 대화를 주로 나눴던 해수는 점점 세이의 가정 환경이나 학교 생활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해수는 세이도 자신 못지 않게 답답하고 외로운 처지라는 걸 알고 마음 아파한다. 요즘 유행하는 웹툰이나 드라마라면 여기서부터 해수가 세이를 대신해 세이를 힘들게 하는 어른들과 아이들에게 복수하고 훈계하는(소위 말하는 '참교육'하는) 전개로 흘렀을 것 같은데, 이 소설은 그러지 않는다. 

오히려 해수는 멀쩡한 부모가 있는 세이의 일에 아무 관계 없는 어른이 간섭하는 것도 이상하고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고 은둔 중인 상황이기도 해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대신 가만히 지켜보는 편을 택한다. 그 결과 누군가가 나에게 잘못했다고 비난하면 억울한 마음이 들어도 우선 받아들이고 상대의 감정이 풀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화해와 소통의 시작임을 알게 된다.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일단 참고 상대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도 배운다. 

상담사로서 다시 일을 시작하고 싶었고 그래야 했던 해수에게는 꼭 필요했던 깨우침이지만, 현실에서 경청만으로 사람들의 행동이 바뀌고 세상이 변하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사람들은 경청하는 사람을 호구로 보고 더 나쁜 짓을 거리낌 없이 할 거라는 (불길한) 예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청이 필요한 이유는 분노와 복수로도 세상을 바꿀 순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경하는 마음으로 들으라... 생각할수록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