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꿈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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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미 작가의 책을 그동안 열심히 따라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리뷰 쓴 책만 세어보니 단 세 권(<맨해튼의 반딧불이>, <디어 랄프 로렌>, <사라진 숲의 아이들>)뿐이라서 놀랐다. <그들에게 린디합을>, <작은 동네>는 책장에 꽂혀 있을 뿐 아직 안 읽었고,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은 읽은 것 같은데 안 읽었나...? 


아무튼 그동안 읽은 손보미 작가의 작품들을 쭉 떠올려 보니, 비슷한 듯 다르고 다른 듯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맨해튼의 반딧불이>, <디어 랄프 로렌>, <사라진 숲의 아이들>만 봐도, 세 작품 모두 장르나 소재는 제각각인데, <맨해튼>과 <랄프 로렌>은 영미 소설 같다는 점이 닮았고, <랄프 로렌>과 <사라진 숲>은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들이 과거의 기억을 되짚는 이야기라는 점이 닮았다(셋 다 탐정 소설, 추리 소설 형식의 요소를 가진 점도 눈에 띈다). 


위에 언급한 세 작품에 비하면, 올해 출간된 손보미 작가의 소설집 <사랑의 꿈>은 장르소설의 느낌이 덜하고 (이른바) 순문학에 가까운 작품들이 주로 실려 있다. 중심 인물은 모두 십대 이하의 여자 아이이고, 그 자신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미숙한 상태에서 가장 가까운 인간 관계라고 할 수 있는 가족(주로 부모)의 불안 또는 부재 때문에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러한 인물 설정만 보고 아이의 시선으로 어른들의 모순과 부정을 고발하거나, 아이 자신의 성장 과정을 묘사하는 이야기를 예상했지만. 


예상과 달리, 이 소설집에 나오는 여자아이들은 어른들의 기대나 지시와 어긋나는 행동을 주로 하고, 그러한 행동의 결과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부끄러워하거나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배신을 합리화하고(<밤이 지나면>), 거짓말을 재능으로 여기며(<불장난>), 어린 여자인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기도 한다(<해변의 피크닉>). 자신을 부양하는 엄마보다 자신에게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보모 언니를 동경하는 모순적인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이사>). 


아마도 이 여자아이들은 자라서 엄청난 악녀가 되지는 않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여자가 될 텐데, 이들이 숨기고 있는 잔혹성은 자신의 차로 친 고양이를 산 채로 땅에 묻을 때처럼(<사랑의 꿈>) 이따금 삐져나와 그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아니면 자기보다 잘 사는 친구를 질투하거나 자식 교육 경쟁을 하는 식으로(<첫사랑>) 발현될 수도 있고. 그런 점에서 이 소설집은 여성들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의 기원을 탐구하는 이야기들로도 읽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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