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거미 질 때 샌디에이고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운전하며 소형 디지털 녹음기에 구술한, 막연히 LA/운전 시들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의 모음 - 정지돈 첫 번째 연작소설집
정지돈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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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57자에 달하는 이 연작 소설집은 '나'와 파트너인 엠이 파리와 서울을 걷거나 뛰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보통 이런 식으로 소설에서 등장 인물이 어떤 공간을 걷거나 뛰는 경우 걷거나 뛰는 행위는 장소의 이동을 통해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이나 방식, 수단으로 그려지는데, 이 소설에서는 걷거나 뛰는 행위 자체가 결과이자 목적이다. 


가령 표제작 <땅거미 질 때 샌디에이고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운전하며 소형 디지털 녹음기에 구술한, 막연히 LA/운전 시들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의 모음>에서 산책자에 관한 소설 겸 에세이를 구상 중인 '나'는 파리 시내를 직접 걸어 다니면서 걷기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걸으면서 걷기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문학과 영화, 인물 등을 산만하게 떠올리는데, 이는 걷기 자체가 산만하고 언제든 목표가 분산될 수 있는 행위인 것과 관련 있다. 목적을 위해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 자체가 목적인 삶의 방식은 이 글 마지막에 등장하는 보니 브렘저의 그것과 일치한다. 


형식이나 내용이 일반적인 소설의 그것과 상당히 다르고, 배경지식 없이는 온전히 이해하기 힘든 대목도 종종 있었지만, "조지 오웰을 시시한 작가 취급하면 안 돼. 내가 말했다. 좌파와 우파 모두 좋아하는 단 두 명의 작가 중 하나거든./ 또 하나는 누군데?/ 봉준호." 같은 유머가 곳곳에 산재해 있어서 (책의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했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완독하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문학에서의 이동, 모빌리티라는 개념에 대해 작가가 안은별 연구자와 대담을 나눈 내용이 담겨 있는 점도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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