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과거시제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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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다녔던 90년대에는 과학 상상 그림 그리기 대회, 과학 상상 글짓기 대회 같은 게 있었다. 이름 그대로 과학 기술의 발전이 미래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지 상상해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대회였다. 그 때 많은 아이들이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서 통화하는 전화기나 공중에 작은 비행접시가 떠다니면서 물건을 배달하는 미래를 상상했다. 그 때 그 아이들은 스마트폰으로 화상 통화를 하고 드론으로 물건을 배달 받는 미래가 오리라는 걸 '정말로 알고' 있었을까. 


배명훈 작가의 신작 소설집 <미래과거시제>의 표제작 <미래과거시제>는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선형적인 시간을 사는 인물이 선형적이지 않은 시간을 사는 인물과 만난 상황을 가정한다. 선형적이지 않은 시간을 사는 은신은 미래에 일어난 일을 확정적으로 말할 때 특이한 시제를 사용하는데, 선형적인 시간을 사는 은경이 이 시제의 원리를 연구하고 비밀을 간파하면서 생기는 만남과 변화가 감동적이고 흥미롭다.


<미래과거시제>에는 이 밖에도 혹시 작가가 '정말로 알고' 쓴 게 아닌가 싶은 이야기들이 많다. 생산에 도움이 되는 로봇들만 개발되면서 발생하는 피해를 상쇄하기 위해 소비 로봇을 만드는 미래를 그린 <수요곡선의 수호자>, 우주선이 하필 서울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잠실 롯데타워 꼭대기에 정박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인류의 대변자>, 창작할 때 실시간으로 독자의 응원과 지지를 받고 싶은 창작자들을 위해 개발된 리액션 애플리케이션에 관한 이야기인 <홈, 어웨이>, 신체의 반 이상을 기계로 대체하고 원래의 기억도 잃은 경우 그것은 사람인가 기계인가 하는 문제를 다룬 <절반의 존재> 등이 그렇다. 


특히 <수요곡선의 수호자>는 알파고, ChatGPT 등 인간의 지적 수준을 능가하는 인공지능 기술이 앞으로 더 많이 등장하고 상용화될 경우 어떤 미래가 가능할지 상상해 보는 데 도움이 되었다. 로봇 도입으로 발생하는 일자리 감소, 실업 증가 등을 상쇄하기 위해 로봇세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떠올랐고, 많은 사람들이 기계가 청소하고 인간은 지적인 활동을 미래를 상상했지만, 실제로는 기계가 지적인 활동을 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청소를 한다는 SNS에서 본 우스갯소리가 생각나기도 했다. 


형식상 기발한 시도를 한 작품들도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 운문인 판소리의 운율과 장단을 활용한 판소리 SF <임시 조종사>, 비말에 의해 전파되는 전염병을 막기 위해 발음할 때 침이 튀기는 우리말 자음 'ㅊ,ㅋ,ㅌ,ㅍ'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차카타파의 열망으로>가 그렇다(실제로 이 소설에는 'ㅊ,ㅋ,ㅌ,ㅍ'가 사용되지 않았다). 옛날 말, 특히 근대소설 이전의 말에 관심이 많은 작가님이 앞으로 또 어떤 작품들을 보여주실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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