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나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2
이주란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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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란의 소설 <어느 날의 나>는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선배 언니와 함께 살게 된 주인공 '유리'의 3개월을 그린다. 카페에서 일하는 유리는 이따금 같이 사는 선배 언니와 영화를 보러 가거나, 산책을 하거나, 카페 단골인 재한 씨를 불러서 함께 놀며 일상을 보낸다. 그러다 이따금 버스를 타고 예전에 살던 동네로 가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던 집 주변을 배회한다. 이제 더는 그곳에 유리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유리가 만나러 갈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유일한 혈육을 여의고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나는 <어느 날의 나>를 읽는 동안 일본 작가 무레 요코의 소설이자 고바야시 사토미 주연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을 자주 떠올렸다. 두 소설 모두 분위기가 잔잔하고 독자의 뇌리에 남을 만한 강렬한 사건도 없는데, 생각해 보면 가까운 사람을 잃고 혼자가 된 주인공이 일상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것도 영웅이 적에 맞서 세상을 구하는 일만큼 대단한 체력과 정신력을 필요로 하는 일 아닐까. 호수가 잔잔해 보여도 수면 아래는 전쟁 중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유리가 선배 언니와 함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들도 좋았지만, 혼자서 예전에 할머니와 살았던 집을 찾아가는 장면들이 마음에 더 남는다. 이따금 찾아오는 유리를 알아보고 알은체하는 동네 아주머니라든가, 유리가 마치 자신의 손녀인 양 심부름을 시키는 할머니라든가. 그 때마다 피하거나 싫어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기뻐하며 싹싹하게 구는 유리의 모습이 짠했다. 그렇게라도 과거와 연결되고 싶고, 할머니가 살아 계시던 시절의 자신을 잊지 않고 싶은 것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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