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만우절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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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희 작가의 이름을 오래 전부터 많이 들었는데 작품을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읽어보니 과연 좋고, 요즘 내가 관심 있는 작가들(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하라다 히카 등)이 대체로 노년 여성의 노동과 투병 또는 간병 문제를 다루는데 이 작가도 비슷한 문제를 다뤄서 반가웠다. 남들 눈에는 별일 없이 사는 듯 보이는 사람들의 삶에 어떤 참담하고 황당한 사건들이 있었을 수 있는지, 그들이 그걸 얼마나 감쪽같이 숨기고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달까. 


내가 서른 살 이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별다른 감명을 받지 못했을 것 같은데,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멀쩡하게 잘 살던 사람이 갑자기 죽거나, 아파서 입원하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가족을 잃거나, 소송에 휘말리거나, 투옥되거나 하는 일들이 가까운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것을 보고, 언젠가는 나 역시 그런 일을 겪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되면서부터는 이런 소설을 읽을 때 정신을 집중하게 된다. 무엇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조차 뭐라도 하는 소설 속 인물들의 지혜를 배우고 싶달까. 


가령 <여름방학>의 병자 씨는 퇴직 후 자신의 삶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이름을 바꿔 보기로 한다. <어느 밤>의 할머니는 매일 밤 킥보드를 타고, <스위치>의 청년은 양말을 산다. 그리고 다수의 인물들이 음식을 해먹거나 사 먹는 것으로 시름을 달래는데, 나 또한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푸는 편이었지만 이제는 건강상의 문제로 힘들어졌다(먹고 싶은 걸 원 없이 먹을 수 있는 것도 행복이다...). 대체 삶이 나에게서 뭘 더 빼앗아 가려나. 받는 것 없이 빼앗기기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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