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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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그저 출판사(문학동네)에 대한 신뢰로 구입한 책이다. 표지를 열고 나서야 작가가 칠레 사람이고(루이스 세풀베다 이후 칠레 작가의 책을 읽는 게 참으로 오랜만) 일반적인 소설이 아닌 과학 논픽션 소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과학이라는 단어 때문에 약간의(사실은 상당한) 거리감이 느껴졌으나 2021년 부커상 최종심에 올랐다는 문구에 마음을 달래며(재미가 없어도 대체 어떤 소설이 부커상 최종심에 오르는지 보기라도 하자) 다음 장을 넘겼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 너무 재밌었음. 


이 책에는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프러시안블루라는 안료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시안화물이라는 인체에 치명적인 화합물이 탄생했고, 이는 나치 유대인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을 죽이기 위한 독가스를 생성하는 데 이용되었다. 한편 1차 대전 당시 독일의 독가스 공격을 주도한 화학자 프리츠 하버는 공기 중에서 질소를 추출해 노벨 화학상을 받았고, 그가 발견한 질소 덕분에 비료 혁명이 이루어져 많은 사람들이 기아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과학자들이 어떤 문제를 해결할 답을 찾는 과정에서 그의 목적이나 의도와는 다른 발견이나 발명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살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에 부담감을 느끼고 과학계를 떠나거나 아예 세상과 등지는 인물들도 있다. 


때로는 문제의 답을 찾은 후 더욱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양자역학이다.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는 각각 행렬역학과 파동방정식을 이용해 고전물리학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했으나 각자의 방식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서로에 대한 공격과 반박을 한참 동안 거듭한 끝에야 알아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학자의 모습처럼) 연구실 책상 앞에 앉아 문제만 들여다 보지 않고, 전화통을 붙들고 스승에게 징징대거나 자기보다 한참 어린 여자에게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을 보면서 천재도 별 수 없구나(평범한? 인간이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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