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걷으면 빛
성해나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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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나 평론가가 추천하는 책을 읽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 책은 조해진 작가님이 추천하셔서 읽게 되었는데 기대한 것보다 훨씬 좋아서 깜짝 놀랐고(한국에는 좋은 작가들이 정말 많다),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부러워서 질투가 날 지경이었다. 단 하나 아쉬운 점은, 이 책이 성해나 작가의 첫 소설집이라서 신간이 나오지 않는 한 더 이상 읽을거리가 없다는 것. 작가님 부디 더 많이 써주세요. 열심히 사 읽겠습니다(신간 알리미 신청했어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생각난 건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었다. 머리로는 약자, 소수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마음으로도 장애를 가진 조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츠네오. 하지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일조차 힘겨운데 장애를 가진 사람과 평생을 함께 살 생각을 하니 상상만으로도 큰 부담이 되어서 이별을 택한다. 나는 이 영화를 봤을 때 이것이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이란 남이 총 맞은 것보다 내가 모기 물린 게 더 아프고 괴로운 존재니까. 


이 책에는 츠네오와 조제를 떠올리게 만드는 관계들이 여럿 나온다. 이 책의 '츠네오'들은 청각장애인 할머니를 둔 애인, 레즈비언인 노년의 여성, 몽골에서 온 먼 친척, 농민과 청년이 어우러지는 공동체를 꿈꾸는 삼촌, 위안부 피해자인 집주인 할머니, 공장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에 앞장서는 언니 등 다양한 얼굴을 한 '조제'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헌신에 감동한다. 그러나 중요한 순간에 그들의 편에 서지 않고 등을 돌리거나 침묵하는데, 이는 남을 걱정하기에는 우선 자기 자신의 삶이 버거워서다. 모기 물린 자리가 가려운데 총까지 맞을 순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츠네오들은 각자의 조제를 잊지 않고 기억한다. 자신의 비겁한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합리화하지 않고, 끊임없이 반성하고 속죄하면서 산다. 대표적인 예가 자전소설로도 읽히는 <김일성이 죽던 해>이다. 글쓰기가 저항의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려준 언니. 그 언니의 이야기를 작가인 딸에게 들려주는 엄마. 그러한 엄마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작가. 이런 식으로 전달되고 전파되는 이야기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나아지지 않을까. 그런 세상에는 조제도 없고 츠네오도 없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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