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딸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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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에게 그가 태어나기 전 죽은 언니가 있다는 사실은 다른 책에 언급된 적이 있어서 알고 있었다. <다른 딸>은 바로 그 죽은 언니에 대한 책이다. 아니 에르노는 열 살 때 어머니가 이웃과 나누는 대화를 엿듣다가 어머니가 자신을 낳기 전에 다른 딸을 낳았고 그 딸은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두 분의 입에서 죽은 딸, 즉 아니 에르노의 언니가 언급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아니 에르노도 부모님에게 언니에 관해 묻지 않았다. 


이 사건은 당시 아니 에르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 때까지 아니 에르노는 자신이 부모의 유일한 딸이며 그들의 사랑을 받는 둘도 없는 존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부모에게 다른 딸이 있었고, 자신은 그 딸이 죽고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한, 일종의 대체물 또는 대용품으로서 잉태되고 출산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놀랄 수밖에. 심지어 그 사실을 부모로부터 직접 들은 것도 아니고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하고만 공유하는 비밀로서 알게 되었으니, 열 살의 어린 아이로서는 존재 불안과 깊은 배신감, 우울감을 느낄 만하다. 


어머니는 "그 아이는 쟤보다 훨씬 착했어요."라며 아니 에르노와 죽은 언니를 비교하는 말까지 했고, 이 말은 오랫동안 그를 괴롭혔다. 아니 에르노는 성장 과정 내내 언니처럼 착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언니의 대체물로 살지만은 않겠다는 저항감 사이에서 갈등했다. 차라리 언니가 살아있었다면 부모님이 언니를 그토록 신성화하지는 않았을 터. 하지만 그의 부모는 자식을 딱 한 명만 가질 계획이었기 때문에 언니가 살아있었다면 애초에 그는 태어나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언니의 죽음을 기뻐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죽은 언니의 존재 혹은 부재는 아니 에르노의 삶에 길고도 진한 그림자를 드리웠지만, 그 그림자로 인해 그가 내내 음울한 삶을 산 것만은 아니었다. 자신은 언니와 같은 성녀가 아니고, 아무리 노력해도 언니만큼 착한 딸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렇게 일찍 깨닫지 않았다면, 부모의 기대를 거스르는 결정을 내리거나(낙태, 이혼) 사회적으로 지탄 받을 수 있는 연애에 과감히 뛰어들거나 그 모든 일을 글로 써서 발표하는 일이 가능했을까. 물론 그런 일을 겪지 않아도 위대한 작가는 결국 위대한 작가가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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