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용도 - 개정판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마크 마리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진이란 무엇인가. 사진만 보고 사진 속 사람들의 감정이나 상태를 섣불리 짐작하는 일이 왕왕 있다. 웃고 있는 걸 보니 기분 좋은가 보다, 손을 잡고 있는 걸 보니 많이 친한가 보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사진은 사진 속 사람들이 실제로 겪고 있는 일이나 처해 있는 현실을 그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때로는 진실과는 다른 방향으로 사실을 왜곡하거나 호도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니 에르노와 마크 마리의 산문집 <사진의 용도>를 읽으면서 느낀 것도 바로 그것이다. 


<사진의 용도>는 연인 관계인 아니 에르노와 마크 마리가 정사를 치른 후에 정사를 치르기 직전 벗어놓은 옷가지나 신발, 흐트러진 침대나 소파 등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각각의 사진에 대해 각자가 쓴 짧은 에세이를 엮은 책이다. 이렇게 보면 두 사람이 얼마나 뜨겁게 사랑했는지를 기록한 로맨틱한 분위기의 책일 것 같지만, 사실 이 책에는 이 책에 실린 사진들만 봐서는 알 수 없는 - 당시 이들을 그 무엇보다 고통스럽게 했던 중요한 문제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당시 아니 에르노가 유방암을 진단받고 투병 중이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이들은 생과 사의 기로에 서 있었고 그 때문에 매일 괴로워했지만, 적어도 정사를 치르는 순간에는 죽음과 이별에 관한 생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그 순간을 기록한 사진에는 그들이 그 때 어떤 상황이었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받는 모습이나 수술대에 오른 상황을 기록했다고 해서 그것이 (죽음의 공포와 이별의 불안에도 불구하고 뜨겁게 사랑했던) 그 시절의 두 사람을 온전히 담아냈다고 할 수는 없고... 사진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람이란 무엇인가. 자꾸만 되묻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