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쏜살 문고
아니 에르노 지음, 윤석헌 옮김 / 민음사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건>은 아니 에르노가 자신의 임신 중절 수술 경험을 고백한 책이다. 1963년 당시 23세 대학생이었던 아니 에르노는 생리가 끊어져서 설마 하는 마음으로 산부인과에 갔다가 의사로부터 임신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에게 임신은 삶이 끝장났다는 선고와도 같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프랑스에서 임신 중절 수술은 불법이었으므로 임신 중절 수술을 받으면 그는 바로 범죄자가 되었고, 임신 중절 수술을 받지 않고 출산을 할 경우 학업을 지속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부모님과 친척, 동네 사람들로부터 결혼도 안 한 처녀가 아이를 낳았다는 비난을 받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임신 중절 수술을 받기로 결정한 후에도 그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일단 불법인 수술을 해줄 의사를 찾기가 힘들었고(이 과정에서 믿었던 남성에게 성희롱을 당하기도 했다), 수술이 불법인 만큼 비용이 비쌌고 위험했다. 임신 중절 수술은 종교(가톨릭)적으로도 금지된 일이기 때문에, 그는 가까운 여자 친구들에게조차 자신이 임신을 했고 임신 중절 수술을 받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털어놓기가 힘들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그는 임신 중절 수술을 받기 어려운 시점이 되기 직전에야 수술을 해줄 사람(여성)을 찾고 지인(여성)에게 돈을 빌려서 겨우 수술을 받는다. 


아니 에르노는 이 '사건'을 겪기 전까지 자신이 남성과 다름없는 존재라고 여겼고, 그에 따라 자유롭게 연애를 하고 성관계를 즐겼다.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 임신의 책임은 여성에게 더욱 무겁게 지워진다는 사실과, 임신의 결과로 여성은 육체적, 정신적 소진뿐 아니라 학업 실패, 경력 단절, 경제적 궁핍 등을 겪게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런데 연표를 보니 임신 중절 수술을 받은 해(1964년)에 결혼하고 첫 아이를 출산했다네... 이쯤 되니 (이 모든 일을 겪고도 결혼과 출산을 결심하게 한) 전 남편과의 일들이 궁금하다. 그에 관한 책도 있으려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