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닉
아니 에르노 지음, 조용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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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는 허구가 아닌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만 쓴다고 했는데, <탐닉>을 읽으니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만 쓴다'는 말이 '경험한 일을 전부 쓴다'는 뜻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탐닉>은 아니 에르노가 1991년 <단순한 열정>을 발표하고 10년 후인 2001년에 <단순한 열정>에 미처 담지 못한 일기문을 엮어 만든 책이다. <단순한 열정>에 담지 않은 일기문이 있다는 것부터가 그의 작품이 곧 그의 일기문은 아니라는 뜻이고, 같은 시기 같은 남성과의 연애 사건을 그렸지만 각각의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의 구체성이나 생생함이 전혀 다르다. (나중에 출간된 <탐닉>쪽이 훨씬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탐닉>에는 S가 소련의 외교관이라고 나오지만 <단순한 열정>에는 동구권 출신의 외국인으로만 언급되는데, 이는 아마도 냉전 시대의 영향인 듯하다. <탐닉>은 1988년에 시작된 S라는 남자와의 연애를 그린다. S와의 연애는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았다. S가 소련의 외교관이었고, 아니 에르노보다 13살이 어렸으며, 유부남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아니 에르노는 르도노상을 수상한 유명 작가이자 대학 교수였던 반면, S는 소련의 외교관이라는 것 외에는 내세울 만한 게 없었다. 그러나 아니 에르노는 S를 숭배하듯이 사랑했고, 오직 S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옷을 사고 몸치장을 하고, 러시아어를 배우고, 가고 싶지 않았던 대통령과의 만찬에 참석하며, 그가 피우는 담배를 집에 쟁여뒀다. 


두 사람은 주로 아니 에르노의 집에서 밀회를 가질 수밖에 없었고, 그 시절에는 휴대폰도 인터넷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연락 수단은 오로지 전화뿐이었다. 그래서 그 시절 아니 에르노는 최대한 외출을 삼가고 집에서 전화기만 보고 있었다는데,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점점 연락이 뜸해지고 무심해지는 S... 평소 나를 사랑하는 사람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사귀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입장인데, 이 책을 보면 정말 나을까 싶다. (서로 비슷하게 사랑하는 게 이상적인데, 그런 관계 쉽지 않아...) <단순한 열정>과 같은 인물, 같은 사건을 다루면서도 또 다른 결의 '열정'을 느끼고 싶은 분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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