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제국 복복서가 x 김영하 소설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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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수입업자로 일하며 세 식구의 가장으로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중년 남성 김기영은 사실 80년대에 북한에서 남한으로 파견된 간첩이다. 간첩이라고는 해도 그의 직속 상관이 일찍이 북한에서 숙청되어 간첩다운 일을 해본 건 예전 일이고 그나마도 손에 꼽을 정도다. 부모는 물론 일가 친척도 없으면서 혼자 힘으로 번듯한 사업체와 서울의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할 만큼 남한 생활에 잘 적응한 그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평소처럼 사무실에 출근해 컴퓨터를 켰는데 당장 24시간 안에 북한으로 귀환하라는 명령이 내려온 것이다. 


이어지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는 김기영과 김기영의 아내, 김기영의 딸의 시점으로 쓰인 이야기가 교차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주된 서사는 물론 김기영의 이야기인데, 간첩으로 남파되기 전후의 그의 삶과 현재의 그의 삶이 묘사되는 방식이 상당히 흥미롭다. 김기영은 북한에서 사실상 이방인이나 다름없는 존재였고 남한에서는 확실한 이방인이었다. 하지만 뛰어난 적응력과 위장술로 북한과 남한 사회 양쪽에 완벽하게 동화되었고, 오랜 세월을 함께 산 가족이나 친구에게조차 본심을 털어놓거나 진짜 정체를 들키는 일 없이 훌륭하게 자신을 위장했다. 


그러다 마침내 그 모든 것과 단절해야 하는 순간이 임박해 왔을 때, 그는 거짓으로 점철된 자신의 삶에도 일말의 진실이 있다는 것과, 거짓 위에 쌓아 올린 관계조차도 끊어낼 때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 남편 혹은 아버지의 극적인 하루를 전혀 알지 못하는 아내와 딸의 서사도 흥미롭다. 이 소설이 한국 독자들에게는 주로 남북 분단 문제를 다룬 소설로 읽힌 반면,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이민자 문제를 다룬 소설로 읽혔다는 점도 신기하다. 2006년에 초판을 읽은 독자들과 지금 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의 감상이 어떻게 다른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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