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 증명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7
최진영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연말에 <구의 증명>을 읽기로 결심한 건, 이 소설이 영화 <본즈 앤 올>과 함께 묶여서 소개된 걸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로 <본즈 앤 올>은 식인 취향을 가진 두 젊은이의 방황과 사랑을 그린 영화인데(아직 안 봄), <구의 증명>이 <본즈 앤 올>과 연결된다는 건 <구의 증명>에도 그러한 요소들(식인, 젊음, 방황, 사랑)이 있다는 뜻일 터. 그중에서도 '식인'이라는 소재가 소설 속에서 어떤 식으로 활용되었는지(최진영 작가님이 쓴 식인 소설은 어떤 느낌일지)가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고, 결론부터 말하면 아주 좋았다. 


이야기는 소꿉친구인 '담'과 '구'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모와 단 둘이 사는 여자아이 담은 어느 날 우연히 동네에서 남자아이 구를 만나고, 오래지 않아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처음에는 동네에서도 학교에서도 붙어 다니는 두 사람을 사귀는 사이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나중에는 정말로 연인이 되었고, 서로에게 다른 연인이 생긴 후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어느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소울 메이트'로 여기며 그리워 한다. 


이렇게만 보면 흔한 사랑 이야기 같지만, 이 소설의 핵심은 이들의 사랑이 아니라 이들의 사랑을 가로막는 현실, 더 정확히는 가난이다. 담과 구는 둘 다 유복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는데, 특히 구는 부모가 빚 보증을 잘못 서고 이후에도 계속 사채를 쓰는 바람에 십 대 때부터 사채업자들의 빚 독촉에 시달리며 학업도 포기하고 밤낮 없이 일하는 신세가 된다. 사람들은 구에게 부모를 버리고 먼 곳으로 도망쳐서 다른 신분으로 새로운 삶을 살라고 하지만, 구는 자신이 도망칠 경우 사채업자들이 부모를 죽이고 자신 또한 잡히면 죽임을 당할 거란 생각에 도망치지 못한다. 


그렇게 점점 더 세상의 끝으로, 끝으로 내몰리던 구는 결국 죽음을 맞고, 구의 짧지만 지난했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목격한 인물인 담은 구의 몸을 땅에 묻거나 태우는 대신 조금씩 먹어서 자기 몸에 담기로 한다. 이는 구가 죽은 후 세상에 혼자 남은 담이 자신의 친구이자 연인이자 형제와도 같았던 구의 흔적을 어떻게든 세상에 남겨놓고 싶은 마음에 하는 행위로도 볼 수도 있지만, 구의 영혼은 무시한 채 구의 몸을 이용하고 착취했던 (구의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에 대한 비판 내지는 저항 행위로도 보인다. 


식인이라고 하면 야만적이고 잔혹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지만, 실제로 이 사회는 수많은 사람들의 몸을 이용하고 착취함으로써 운영되고, 이 과정에서 말 그대로 몸을 다치거나 잃는(먹히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아마도 작가는 이러한 현실을 식인이라는 소재를 통해 고발하고자 한 것 같고, 이러한 생각을 하고 보니 처음에는 (최진영 작가님 소설답지 않게) 비현실적이라고 느꼈던 이 소설이 그 어떤 소설보다도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