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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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트리샤 하이스미스 하면 영화로도 친숙한 '리플리' 시리즈나 <캐롤> 등이 먼저 떠오른다. 둘 다 지금도 여전히 인구에 회자될 만큼 신선하고 세련되어 하이스미스가 얼마나 오래 전에 활동한 작가인지 감을 잡지 못했는데, 2021년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고 한다. 이를 기념해 출간된 소설집 <레이디스>에는 하이스미스가 1936년부터 1949년까지 집필한 단편 16편이 실려 있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하이스미스가 '리플리' 시리즈, <열차 안의 낯선 자들>, <캐롤> 등을 발표해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명성을 얻기 전에 쓰인 작품들이다. 그래서 어쩌면 조금은 미숙하고 완성도가 부족한 작품이 있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의외로 첫 작품부터 마지막 작품까지 읽을수록 놀랍고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금남(禁男)의 공간인 수녀원에서 어릴 때부터 여자로 키워진 남자아이의 이야기를 그린 <세인트 포더링게이 수녀원의 전설>을 시작으로, 지하철 플랫폼 위에 버려진 가방을 둘러싼 두 남자의 갈등을 다룬 <미지의 보물>, 오랫동안 우울증에 시달린 뉴욕의 택시 기사가 시골 마을로 휴가를 가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최고로 멋진 아침> 등 작품마다 등장하는 인물 유형과 배경, 소재 등이 다양하고 전개를 종잡을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이스미스가 이후에 선보이게 되는 작품 세계를 미리 엿볼 수 있는 작품들도 여럿 있다. <모빌 항구에 배들이 들어오면>이라는 단편에는 오랫동안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폭력을 행사해 온 남편을 살해하고 예전에 살았던 항구 마을로 돌아가는 여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안정적이고 평화로워 보이는 생활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과 공포,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은근하고도 질긴 차별과 억압을 무서우리만치 예리하고 섬세하게 그린 점이 지극히 하이스미스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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