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력 시대 - 재야생화되는 지구에서 생존을 다시 상상하다
제러미 리프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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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것은 없다. 누구나 알고 있는 진리이지만, 최근 몇 년 동안 팬데믹을 겪으면서 이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임을 깨달은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팬데믹을 단순한 전염병이 아니라, 이제까지 인류가 성장 혹은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배출해온 쓰레기를 비롯한 각종 오염원들을 지구 생태계가 스스로 정화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신호로 바라보는 관점도 있다. 그렇다면 이제 인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경제 사회 사상가 제러미 리프킨의 신간 <회복력 시대>는 팬데믹 이후 인류의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할지를 숙고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2022년에 출간되었지만, 저자 후기에 따르면 2013년에 이 책의 주요 주제에 대한 조사를 시작해 총 8년에 걸쳐 집필했다고 한다. 이제까지 <소유의 종말>, <한계비용 제로 사회>, <글로벌 그린 뉴딜> 등을 발표하며 기존 경제 모델의 한계와 새로운 발전 모델의 필요성을 주창해온 저자의 예측력이 이번 책에서도 발휘된 것으로 보인다. 


"진보의 시대는 사실상 이미 끝났고 적절한 사후 평가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모든 곳에서 더욱 결연한 목소리로 점점 크게 울려 펴지는 새로운 내러티브는 우리 인간 종이 우리의 세계관에서부터 경제에 대한 이해, 거버넌스의 유형,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지구라는 행성과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11쪽) 


저자에 따르면 그동안의 경제 성장 모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이제 '회복력(resilience)'을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삼아야 한다. 기존의 산업 문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 가치는 '효율성'이었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산업 문명은 인류에게 유례가 없는 번영과 풍요를 가져다 주었지만, 자원 고갈과 환경 오염이라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고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영속해야 할 생명체라는 사고방식은, 수많은 다른 생물종의 멸종과 그로 인한 생태계 파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인류의 능력은 무한하며 인류가 자연을 완전히 정복했다는 생각은 착각이라는 것이 이번 팬데믹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이제 인류는 정복이 아닌 '적응'의 패러다임으로 다음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다행히 적응은 인간에게 아주 낯선 개념이 아니다. 인간의 몸은 수많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유생생물, 고세균, 균류 등이 공존하는 하나의 생태계와도 같다. 인간의 몸은 섭취하는 음식이나 약물 외에도 24시간, 태음, 계절, 265일 등의 주기 리듬으로부터 영향받는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인간의 몸을 하나의 생태계, 하나의 행성, 하나의 우주로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사람의 몸, 다른 생명체, 다른 생태계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확장된다면, 인류의 미래가 지금보다 밝을 거라고 예측한다. 사회적, 정치적으로는 일국의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이익만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인접 국가들을 비롯한 국제 사회의 이익, 멀리는 우주 전체와 미래 세대를 포함하는 정책 결정과 판단이 이루어진다면 분쟁 가능성이 줄어들고 분쟁으로 인한 자원 고갈 및 생태계 파괴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몸에 대한 저자의 사유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문제들을 풀 수 있는 열쇠로도 보인다. 공교롭게도 이태원 참사, 봉화 광산 붕괴 사고, 제조업 노동자 사망 사고 등 최근 한국의 언론 매체를 장식하고 있는 사건 사고들의 중심에는 몸이 있다. 만약 정부와 기업이 국민과 노동자의 몸을 자신들의 몸처럼 여기고 소중히 대했다면 과연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까. (다른) "생명에 대한 심오한 공감적 공명의 느낌" 없이는 인류 앞에 놓인 거대한 투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저자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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