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복복서가 x 김영하 소설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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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즐거움을 새삼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전에는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는 일이 뭐가 그리 즐거운지 잘 몰랐는데, 최근 김연수 작가나 황정은 작가의 책을 다시 펼쳐 보면서 예전과는 다른 인상과 감상을 받고 그 시절의 내가 많이 어렸거나 지금의 내가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한다.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도 그렇다. 이 책은 2013년 문학동네에서 나온 초판으로 한 번 읽고, 2020년 복복서가에서 나온 개정판으로 두 번 읽었다. 2013년 초판을 읽고 쓴 리뷰를 보니 당시의 나는 '알츠하이머병'이라는 소재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친부를 비롯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죽인 주인공 김병수가 마지막 살인 이후로 25년 동안 잡히지 않고 살다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려서 자기 자신이 저지른 범죄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는 설정의 아이러니가 그 시절의 나에게는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2020년 개정판을 읽으면서는 '살인'이라는 소재에 좀 더 집중했다. 대체 소설 속 연쇄 살인 사건의 진범은 누구일까. 초판을 읽을 때는 박주태가 범인인데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김병수가 스스로를 범인으로 오해하고 괴로워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개정판을 읽으니 애초에 박주태라는 인물이 실재하는지도 의문이고, 박주태라는 인물은 실재하지만 김병수가 생각하는 박주태와는 다른 인물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범인은 박주태가 아니라 김병수의 머릿속에 있는 박주태, 즉 김병수인 걸까...? 


김병수의 머릿속에 있는 박주태가 김병수의 또 다른 인격이라면, 이 인격의 존재는 인간의 기억을 잡아먹는 알츠하이머병이라는 무시무시한 질병조차 이길 수 없는 악의 거대함, 절대성을 보여준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소설은 완전범죄를 거듭해 저질러온 악인조차 시간과 늙음 앞에서 무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인간의 노쇠라는 절대적인 조건의 변화조차도 악인의 본성 혹은 본능은 무력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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