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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해
황효진.윤이나 지음 / 세미콜론 / 2021년 10월
평점 :

주로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콘텐츠를 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이후로, 나는 가급적이면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콘텐츠를 보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큰 도움을 받고 있는 매체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여성이 보는 여성의 이야기'를 전하는 팟캐스트 <시스터후드>이다. 윤이나, 황효진 작가가 진행하는 이 방송은, 매주 여성이 만들거나 여성이 주역인 책,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등을 다각도로 치밀하게 분석해 소개한다. 덕분에 유익하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많이 만나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윤이나, 황효진 작가의 책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해>는 편지 형식이다. 팟캐스트보다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형식을 택해서인지 저자들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황효진 작가는 "사람들은 여자를 쉽게 미워한다. 글 쓰는 여자는 더욱 미워한다. 여성에 관한 글을 쓰는 여자는 그보다 훨씬 더 미워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우울했던 시기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윤이나 작가는 한때 '탈조선'을 꿈꿨지만 "이제 내게 세계는 살아남아야 하는 여성들이 존재하는 곳, 내가 사랑하는 여성들이 살고 있는 곳이며 안과 밖은 그리 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밝힌다.
그런 저자들이 다시 쓰고 계속 살아갈 힘을 얻는 원천은 결국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콘텐츠들이다. 윤이나 작가는 강유가람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는 매일매일>를 보다가 여성주의 의료협동조합 살림에서 일하고 있는 어라 님이 "나는 여성주의자가 먹고사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해."(154)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고 크게 놀랐다. "페미니스트는 '자기성찰적이고, 일상으로부터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고 그 태도가 생존을 가능케 한다는 거예요. 반성하고, 바뀌고, 돌아보고, 나아가는 사람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죠."(155)
저자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것이 상당히 피로한 일이라고 느낀다. 한국 사람들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거나 미워하고, 그래서 탈조선을 꿈꿨지만 이루지 못했다. 지금 내가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은 이유는 내가 사랑하는 여성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고 싶은 대로 사는 모습을 보는 것, 단지 그뿐이다. 그중에는 윤이나, 황효진 작가도 있고, 이들이 소개해 준 여러 창작자들도 있다. 부디 모두 함께 무사히 미래로 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