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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연예인 이보나
한정현 지음 / 민음사 / 2020년 7월
평점 :

제목만 봤을 때는 어린 나이에 데뷔한 여자 연예인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한정현 작가의 전작 <줄리아나 도쿄>만을 읽은 상태에서 제목을 봤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막상 읽어보니 짐작한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이었는데, 이번에는 한정현 작가의 최근작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를 읽은 후라서 놀랍지는 않았다. 소재와 내용 면에서 연결되는 점이 많아서, 오히려 반가웠고 읽기도 편했다.
책에는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같은 이름을 가진 인물이 여러 단편에 등장하기 때문에 연작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잘 보면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인물인 경우도 종종 있다. 각 단편의 시대적 배경은 일제강점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공간적 배경은 한국과 일본(도쿄부터 오키나와까지)을 넘나든다. 작가는 여성, 성소수자, 트랜스젠더, 이민자, 혼혈아, 재일(자이니치) 등 사회에서 다수자와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인물들의 문제를 주로 그릴 뿐 아니라, 이들이 어떤 지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적극적으로 상상하여 보여준다.
가령 표제작 <소녀 연예인 이보나>의 '주희'는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 게이오 대학에서 유학한 엘리트이지만 실은 이름난 만신(무당)의 아들로, 자신도 아버지(어머니)처럼 남성의 몸을 가졌지만 여자로 살기를 꿈꾼다. 주희는 조선으로 돌아가는 귀국선에서 우연히 해녀 출신의 '이 씨'를 만나는데, 둘은 타고난 성별을 불편하게 느끼고 다른 성별로 살기를 꿈꾼다는 점에서 동지 의식을 가지게 된다.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의 '안나'는 일제 강점기에 당시 여성으로는 드물게 간호원이라는 전문직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갖은 편견과 차별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그런 안나가 남장을 한 여성 '경준(경아)'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흥미롭고 감동적이다.
한정현 작가는 당사자 혹은 관련자들이 여전히 고통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습적으로 외면받거나 무시되어온 문제들을 과감히 다룬다. 단순히 어떤 문제를 제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사료들과 그에 기반한 연구 논문들을 바탕으로 소설의 소재를 찾고 이를 완성된 이야기로 구성하여 보여준다는 점이 인상적이고 매력적이다.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이지만,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한정현 작가의 작품을 읽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