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은 장미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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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외국 생활을 동경했다. 영어뿐 아니라 제2외국어 공부에 열심이었고, 전공을 정치외교학으로 정한 것도 그런 동경에서 비롯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행이나 출장으로만 외국을 '경험'해 보았을 뿐 진정한 의미의 외국 '생활'은 해본 적 없이 삼십 대 후반이 된 지금은 외국 생활에 대한 동경이 거의 없다. 돈 벌기, 집 구하기, 노후 대비하기 등 한국에서 하기 힘든 일이 외국에선 훨씬 더 하기 힘들 거라는 자각 내지는 체념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외국에서 생활하시는 분들 진심으로 존경한다.) 


은희경 작가의 소설집 <장미의 이름은 장미>에는 미국 뉴욕이 배경인 단편 네 편이 실려있다. 각 단편의 화자들은 장래에 대한 불안이나 이혼 후의 상실감 등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끌어안은 채로 뉴욕에 도착한다.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 낯선 언어로 대화를 하다 보면 문제가 해결되지는 못해도 잊힐 거라는 기대를 내심 했겠지만, 막상 뉴욕에 와보니 한국에서와 별 다르지 않은 복잡하고 지루한 일상이 이어지고, 사람들은 불친절하거나 무례하며, 영어는 물론이고 한국인과도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상황에 놓인다.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도 삶이 즐겁지 않다면 문제는 나일지도 모르겠다는 자각이 들 때쯤, 화자들은 각각 어떤 사건을 겪거나 어떤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떠나지 않았다면 영영 몰랐을 감정이나 진실을 알게 된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마지막에 실린 단편 <아가씨 유정도 하지>에 등장한다. 오십 대의 소설가 '나'는 뉴욕에서 열리는 문학 행사에 어머니와 동행한다. 팔십이 넘은 어머니가 뉴욕에 함께 가겠다고 고집한 이유를 여행 내내 짐작조차 못한 '나'는 여행 막바지에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된다. 그것은 한 사람의 생에 대한 인상을 송두리째 바꿀 정도의 위력을 지닌 진실이며, 좀 더 자세히 알고 싶기에 이 작품이 장편화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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