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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레모사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8
김초엽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12월
평점 :

인간의 성숙도는 나이에 비례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 요즘은 나보다 어린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김초엽 작가의 책을 읽을 때도 그렇다. 김초엽 작가가 나이는 나보다 7살 어린데, 사고의 넓이와 통찰의 깊이는 7배 이상이다. 인생 2회차, 아니 7회차 느낌.
<므레모사>는 김초엽 작가의 첫 호러 소설이자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한쪽 다리를 잃은 무용수 '유안'은 공장에서 유독성 화학물질이 유출되는 사고가 있은 후 사람들은 죽고 좀비들만 남았다는 소문이 무성한 이르슐의 도시 므레모사로 여행을 가게 된다. 유안과 함께 여행을 간 사람들은 관광학 연구자, 다크 투어리스트, 여행매거진 기자, 여행 유튜버, 의문의 남자까지 모두 다섯 명. 힘들게 므레모사에 도착한 이들은 계속해서 이상한 일들을 겪는다.
소설 초반부터 '다크 투어리스트'라는 단어가 등장하기도 하고, 작가 자신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다크 투어리스트 : 어둠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소설의 영감을 얻었다고 밝히기도 해서, 나는 이 소설이 다크 투어리즘의 실체나 폐해를 폭로하는 전개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다크 투어리즘은 소설의 소재일 뿐 핵심이 아니었다.
오히려 핵심은 소설에서 재난 또는 장애로 대표되는 '비정상'의 상태를 그 자체로 인정하지 않고 '정상성'을 수호하기 위해 제거하거나 은폐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끔찍한 사고로 인해 폐허가 된 지역으로 '놀러'오고, 의족을 달고 춤을 추는 무용수를 보면서 내 처지가 저 사람보다는 낫다고 위로하는 사람들의 무신경함과 오만함,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어떤 이들은 그렇게 적극적으로 삶을 거부하는가. 왜 비이성적으로 스스로를 해치려 드는가."(174쪽)라는 질문에 "내가 바라는 건 죽음이 아니었다. 나는 삶을 원했다. 누구보다도 삶을 갈망했다. 단지 다른 방식의 삶을 원할 뿐이었다."(175쪽)라고 답하는 인물과 이 문장들을 쓴 작가와 이 문장들을 읽고 공감하는 나. 여기가 재난지가 아니라면, 대체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