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 타오르다
우사미 린 지음, 이소담 옮김 / 미디어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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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는 덕질이지만, 덕질을 하는 매 순간이 행복한 건 아니다. 특히 남자 연예인을 덕질하는 경우에는, 덕질의 대상이 연예면이 아닌 사회면에 나올까 봐 늘 두렵다(열애설, 결혼 발표보다 더 두렵다). 경험자로서 말하건대, 최애가 사회면에 나올 때의 기분은 놀람, 충격 정도가 아니다.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는 배신감,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 나에 대한 실망, 그동안 쏟아부은 시간과 애정이 쓸모없게 되었다는 좌절... 그런데도 대상은 바뀔지언정 덕질은 계속되고, 하고 싶다는 것. 그게 가장 공포스럽고 환멸적이다. 


우사미 린의 소설 <최애 타오르다>는 아카리의 최애 남자 아이돌인 마사키가 팬을 때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시작된다. 논란이 커지면서 탈덕하는 팬이 속출하고 마사키의 팀 내 인기순위가 하락하는 상황이지만, 아카리는 소문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덕질을 한다. 팬들이 탈덕하면서 내놓은 마사키의 굿즈를 열심히 사들이고, 악플에 개의치 않고 마사키의 팬 블로그를 운영한다. 급기야 덕질에 빠져서 학업을 등한시하고 아르바이트도 게을리한다. 그런 아카리를 보다 못한 가족들마저 등을 돌린다. 


아카리와 마찬가지로 남자 아이돌을 덕질한 적이 있고, 최애가 사건 사고를 일으켜 논란의 중심에 서는 걸 본 경험도 있지만, 소설 초반에는 아카리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라면 아무리 최애라도 사람을(그것도 팬을) 때렸다는 소문을 들으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사실이라면 바로 탈덕할 것 같은데, 사실 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더욱 맹목적으로 최애를 옹호하는 아카리의 모습이 신기했다. 하지만 이후 학교에서 쫓겨나고 가족들에게 버림받는 아카리를 보면서, 아카리에게 최애는 단순한 덕질의 대상이 아니라 의지할 곳 없는 세상에서 유일한 버팀목이자 계속 살아갈 이유를 제공하는 존재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라는 이유로 딸을 속박하는 외할머니와 그런 엄마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 그런 엄마에게 사랑받는 딸이 되려고 기를 쓰고 사는 언니, 타지에서 산다는 핑계로 외도를 하는 아빠. 혈연인데도 나에게 고통을 주는 이들에 비하면, 아무 인연이 없는데도 나에게 기쁨을 주는 최애가 낫다고 여기는 마음. 나도 모르지 않는다. 아카리가 논란의 중심에 선 최애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옹호한 것은, 결점이 있고 사고를 치더라도 무조건적으로 보호받고 사랑받고 싶었던 자기 자신의 마음이 투영된 것 아니었을까. 


최애와 함께 아카리 자신도 타오르는 결말이지만, 나는 이 결말이 새드엔딩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화상이 두려워 내내 미지근하게 사는 사람보다는 화상을 입을지라도 타오르는 것에 다가갈 용기가 있는 사람, 살면서 한 번은 스스로 뜨겁게 타오른 적 있는 사람이 훨씬 더 멋지고 '인간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카리가 부디 이 에너지로, 다음에는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뜨겁게 살아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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