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녀 힙합 - 집밖의 세계를 일구는 둘째의 탄생
이진송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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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엄마가 나와 (여)동생에게 "엄마가 둘 중 누구를 더 사랑하는 것 같아?"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나"라고 대답했고 동생도 자기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누구를 더 사랑하는지 알려주지 않았지만, 나는 엄마가 나를 더 사랑한다고 확신하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상관없다. 다만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건, 나 자체를 사랑한다기보다는 내가 '첫째'라는 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첫째가 아니었어도 나를 이만큼 사랑해줬을지, 엄마한테 아들이 있었어도 딸인 나를 사랑해줬을지는 확신하기 어렵다(엄마도 딸만 둘이라서 "너희한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말로 자신의 성차별 가능성을 인정한 바 있다). 


의외였던 건 동생이 나보다 엄마한테 사랑받았다고 느끼는 점이었다. <차녀힙합>에 나오는 것처럼, 내 동생도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또 딸이다", "꽝이다" 소리를 들었고, 오랫동안 내 옷을 물려받아 입었다. 학창 시절 내내 엄마는 내 학부모 모임에만 참석하고 동생의 학부모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았고, 지금도 모두가 엄마 아빠를 내 이름으로만 부르고 어떤 친척은 동생을 '(내 이름) 동생'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런 사실에 대해 언니인 내가 분노 혹은 미안함, 안쓰러움을 느끼는 것과 달리 동생은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걸 보면, 성격이 낙천적인 건지 무던한 건지. 혹은 애초에 타인에 대한 기대가 낮은 걸까. (이것도 혹시 차녀라서?) 


<차녀힙합>을 읽는 동안 책에 나오는 내용에 관해 동생과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나눴다. 우리는 저자의 자매처럼 치고박고 몸싸움을 한 적도 없고,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경쟁을 한 적도 없다(전술했듯이 우리는 서로 자기가 부모한테 더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ㅋㅋ). 하지만 이건 동생과 나의 성격이 특별히 좋아서가 아니라, 동생과 내가 공유하는 경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동네에 아들 잘 낳는 여자가 있다며 엄마한테 씨받이를 권유했던 할머니(아들은 어려워서 아빠한테는 말도 못함), 셋째도 딸이면 안 된다고 낙태를 권유했던 외할머니(결국 낙태했다), 손주들 중에 우리 자매가 가장 좋은 대학에 들어갔지만 손자들에게만 등록금을 줬던 할아버지. 


그들 또한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주의의 피해자인 걸 지금은 알지만, 책에 나온 대로 "열 살도 되기 전에 나의 출생이 실망을 동반했다는 것"과 "열심히 해서 뭔가를 성취해낼 때마다 고추 이나 들어야 했"던 것은 여전히 괴롭고 슬프다. 맏이라서 그나마 대접받은 나도 이런데, 차녀이거나 중녀인 사람들은 오죽할까. 차녀와 (나처럼) 차녀인 동생을 둔 장녀는 물론이고, 장녀인데 남동생이 있거나, 외동인데 딸인 사람도 이 책의 여러 대목에 공감할 것이다. 책의 문장을 빌리면, "현실 세계가 여성을 2등 시민 취급하기에, 세상 모든 여성은 가정 내 출생 순서와 무관하게 ‘차녀성’을 가진다고도 볼 수 있"으므로. 


실컷 웃다가 울다가 하면서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마음 한구석에 쌓여  있던 감정들이 정리되어 개운하고 후련하다. 딸로 태어난 게 내 잘못인가. 딸이라고 차별하는 사람들 잘못이지. 이진송 작가님, 곽민지(비혼세) 작가님, 신예희 작가님 등등 내가 좋아하는 분들 대다수가 차녀라는 사실을 알게된 것도 수확이다(물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차녀는 내 동생♥). 주변 사람들의 형제 관계와 (원)가족 내에서의 경험도 궁금하다. 이 책만큼 스웩 넘치게 고백 해볼테면 해보라지(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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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6-22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차녀는 내 동생‘에 적극적 공감을 마구 눌러드리고 갑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차녀는 이 지구상에서 제 동생입니다. 으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