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코리안 티처 - 제2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서수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7월
평점 :

<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서수진 작가의 단편이 마음에 들어서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다가 읽게 된 책이다. 등단작인 것 같은데(제2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아쉬운 점 하나 없이 너무 좋아서 왜 이제야 알게 되었나 싶다. 서수진 작가의 이전 작품들은 물론이고 이후에 발표될 작품들도 쭉 따라 읽을 생각이다.
소설은 4명의 여성 비정규직 한국어 강사의 시점으로 대학 부속 한국어학당의 1년을 그린다. 석사 이상의 학력을 가진 이들은 몇 년 동안 취업 준비를 한 끝에 명문 H대 한국어 학당의 비정규직 상사로 채용되었다. 신입 강사인 '선이'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한국어 강사 시험에 합격해 겨우 취직했다. 어렵게 취직이 되었으니 무슨 일을 당해도 참겠다고 각오했지만, 선이가 맡은 베트남 특별반의 남학생이 불법 촬영한 선이의 사진을 '#Koreanhotgirl'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난처한 상황에 놓인다.
이 밖에도 누가 뭐래도 할 말은 해야 하는 성격의 8년 차 베테랑 강사 '미주', 강의평가 1위를 놓치지 않는 인기 강사 '가은', 조산 위험이 있는데도 다음 학기 재계약이 안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책임강사 '한희'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채용 절벽 문제부터 비정규직 고용 문제, 시간강사 보호법 문제, 외국인 노동자 차별 문제, 임금 체불 문제 등 한국 사회의 노동 문제가 각각의 에피소드에 촘촘히 박혀 있다. 불법 촬영과 대학 내 성폭력, 임신과 출산,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문제 등도 나온다.
일반적인 학교나 학원이 아닌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학당이 배경이라는 점에서 특수성이 엿보이지만, 이 소설은 대학을 비롯한 기업화된 조직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는 고학력 여성들의 보편적 삶을 그린 오피스물로 보인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취업 준비를 했지만, 안착한 직업은 비정규직 시간 강사. 이마저도 경쟁이 치열한 자리라서 임출육은 고사하고 병가 쓰기도 쉽지 않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 임용이 되지 않는 한 장래가 불안한 건 여느 비정규직 노동자와 마찬가지다.
비슷한 조직에서 일해본 적이 있는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인물들의 이름 위로 아는 얼굴들이 떠올라서 혼났다. 일개 사무직이었던 내 눈에는 자격증도 있고 학위도 있는 강사님들이 부럽게만 보였는데, 이 소설을 읽고 그들에게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는 걸 알았다(다들 잘 계시려나). 문제는 고용주인 대학인데, 노동자들끼리 경쟁하고 싸우게 만드는 경향은 점점 더 강해지는 것 같다. 요즘 대학을 보면 (미래의 노동자인) 학생들조차 대학 노동자들을 적대시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라떼는) 대학 노조에서 집회하면 학생들이 도와주러 가기도 했는데...
다시점 소설인 만큼, 같은 상황을 두고 인물들이 각자 자신의 성격이나 입장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보고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가령 입바른 소리를 잘하는 미주를 두고 누구는 분위기 흐린다고 불편해하는 반면 누구는 숨기는 것 없이 시원시원해서 좋다고 생각한다. 강의평가 1위를 놓치지 않는 가은에 대해 누구는 학생들에게 잘 보인 대가라며 질투하는 반면 누구는 그것도 실력이라고 존경심을 표한다. 다양한 여성들의 다양한 성격과 내면을 보여주는 점도 이 소설의 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