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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스 갬빗 (양장)
월터 테비스 지음, 나현진 옮김 / 연필 / 2021년 9월
평점 :

동명 넷플릭스 드라마의 원작 소설이다. 무려 1983년에 초판이 나왔고, 드라마는 아직 못 봤는데 원작 소설이 재미있으니 드라마도 재미있을 것 같다(아닌 경우도 있지만). 체스에 관한 소설이지만 체스를 잘 몰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체스는 못 두지만 킹, 퀸, 비숍, 룩, 나이트, 폰 등 기물의 이름과 기능 정도는 아는데, 그 정도 지식만 가지고 있어도 대체로 이해하며 읽을 수 있었다(물론 체스에 대해 잘 알면 이 소설이 훨씬 더 재미있었을 것 같다).
베스 하먼은 여덟 살 때 보육원에 맡겨졌다. 보육원 원장은 걸핏하면 아이들에게 폭언과 체벌을 가하고, 날마다 아이들에게 신경안정제로 짐작되는 약을 먹이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런 원장 밑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던 베스는, 어느 날 우연히 보육원 경비 샤이벌 아저씨를 통해 체스를 접하게 되고 무서운 속도로 체스 기술을 섭렵한다. 이후 베스는 휘틀리 부부에게 입양되어 보육원을 떠나는데, 오래지 않아 휘틀리 부부는 별거에 들어가고 베스는 휘틀리 부인과 함께 지내게 된다. 입양된 후에도 꾸준히 체스 기술을 연마한 베스는 체스만 잘 두어도 먹고사는 길이 열린다는 걸 알게 된다.
베스는 켄터키주 챔피언십을 시작으로 수많은 체스 대회에 참가한다. 이 과정에서 상금도 많이 타고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체스 천재로 알려진다. 그러나 시합에 대한 부담과 패배로 인한 고통을 잊는 과정에서 어릴 때부터 복용했던 신경안정제와 술에 대한 의존이 심해지고, 여기에 개인적인 어려움이 겹치면서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된다. 처음에는 베스의 빛나는 재능이 인상적이라면, 나중에는 빛나는 재능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라서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문제들과 그로 인해 고통받으면서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베스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고아 소녀의 인생 역전기'라는 점에서 어릴 때 읽은 <소공녀>나 <키다리 아저씨> 같은 동화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 동화들과 <퀸스 갬빗>의 다른 점은, 주인공이 불행한 처지에 놓인 자신을 도와줄 타인(주로 남자)과의 만남을 기대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 소설에서 남자들은 베스를 도와주기보다는, 베스가 어린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하거나 베스의 재능을 질투하는 모습을 보인다. 남자들의 이런 면을 부각하는 편이 남자들한테도 덜 부담되고 여자들한테도 (현실 적응 면에서) 유용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