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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숨
조해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3월
평점 :

책을 읽는 것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바꿀 수도 있겠지만 바꿀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 그러나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건, 한 권의 책을 읽음으로써 나의 세상,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바꿀 수는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 책, 조해진의 소설집 <환한 숨>이 그렇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조해진 작가를 알고, 조해진 작가의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조해진 작가를 모르고 흘려보낸 시간들이 아쉽고, 죽기 전까지 조해진 작가의 소설을 한 편이라도 더 읽고 싶다.
2021년에 출간된 이 소설집에는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조해진 작가의 소설이 으레 그렇듯이 사회에서 대체로 약자, 소수자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혼자서 암 투병 중인 중년 여성과 그를 간병하는 동창(<환한 나무 꼭대기>), 실습이라는 명목으로 공장에서 착취당하다 죽음을 맞은 특성화고 학생과 그의 담임인 계약직 교사(<하나의 숨>), 해직된 선배 기자와 해직된 기자를 대신하기 위해 임시 채용된 후배 기자(<경계선 사이로>),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정찰병이었던 노인의 죽음을 계기로 재회한 구술 기록자들(<눈 속의 사람>) 등이 그렇다.
연령도 직업도 다양한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고의로도 실수로도 남을 해하지 않았으나 결과적으로는 남을 해한 모양이 되어 누군가가 죄를 묻거나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는 상황에 처한다는 것이다. <흩어지는 구름>에서 '나'와 남동생은 남매지만 만난 적이 거의 없다. 일찍 남편을 여읜 어머니가 아이 둘을 키울 여력이 안 되어 '나'만 남기고 남동생은 친정에 맡겼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결정한 일인데도 '나'는 남동생을 볼 때마다 죄스럽다. 어쨌든 '나'는 유년 시절 내내 어머니와 함께 살았고, 그건 남동생이 누리지 못한 혜택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또한 조해진 작가의 자전소설인 <문래>가 실려있다. 부모님이 익숙한 고향을 떠나 낯선 서울에 정착하던 시기의 일들을 되짚음으로써, 작가는 자신의 삶의 시작된 공간과 시대를 돌아볼 뿐 아니라 자신의 글이 탄생한 기원까지 돌아본다. 작가가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 높아지려 할수록 한없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갇힌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것은 작가 자신이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했고 눈길은 아직도 거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