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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랄프 로렌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평점 :

어릴 때 꿈꾸었던 삶을 어른이 되어 그대로 살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그건 멋진 일일까 아니면 끔찍한 일일까. 나는 어릴 때 꿈꾸었던 일 중에 이룬 것도 있고 이루지 못한 것도 있는데, 이룬 건 이룬 것대로 이루지 못한 건 이루지 못한 것대로 괜찮은 것 같다. 원하는 건 모두 가지고 완벽하게 꿈을 이뤘다면, 원하지 않았던 것의 매력이나 꿈을 이루는 일의 감사함을 모른 채로 살았을 것 같다.
2017년에 출간된 손보미 작가의 장편 소설 <디어 랄프 로렌>에는 꿈꾸었던 일을 이루지 못하고 그 꿈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야기는 미국에 있는 대학원에 다니는 종수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전도유망한 대학원생인 종수는 어느 날 갑자기 연구실에서 해고된다. 하루 만에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지금 있을 곳조차 사라진 종수는 기숙사에서 짐을 빼던 도중 수영이 보낸 청첩장을 발견한다.
그러면서 시작되는 과거의 이야기. 고교 시절 종수는 값비싼 랄프 로렌 코트를 입고 다니는 남학생이었다. 어느 날 랄프 로렌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까지 랄프 로렌 제품들을 사 모으던 수영이 종수에게 말을 건다. 랄프 로렌에게 쓴 편지가 있으니, 영어를 잘하는 종수가 영어로 번역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부탁이었다. 그때까지 공부 잘하는 모범생으로만 살았던 종수는 왠지 모르게 수영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간단해 보였던 편지 영역은 예상과 달리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이야기는 종수의 현재와 과거가 교차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오래전 수영이 제기한 질문, "왜 랄프 로렌은 시계를 만들지 않았는가?"의 답을 찾기 위해 온갖 신문과 책과 자료를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이름이 떠오른 인물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는 종수의 모습은 마치 사설탐정 같았고, 먼저 읽은 손보미 작가의 소설집 <맨해튼의 반딧불이>에 나오는 탐정의 모습과도 닮아 보였다. 한국 문학에서 보기 드문 소재가 많이 나와서 신선했고, 도입부에 나오는 짧은 이야기들이 소설의 다른 대목에서 다시 등장하는 구성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