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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드라이브 ㅣ 오늘의 젊은 작가 31
조예은 지음 / 민음사 / 2021년 2월
평점 :
창비에서 나온 박소영 작가의 소설 <스노볼>을 읽고 리뷰를 쓰려고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검색하다 비슷한 제목의 소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똑같이 '스노볼'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소설이 발표된 게 신기하기도 하고, 두 작품이 어떻게 다르거나 비슷한지 궁금하기도 해서 바로 구입해 읽어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디스토피아가 배경인 건 같은데 작품의 결이나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이야기는 모루와 이월의 시점이 교차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엄마, 이모와 함께 사는 모루는 하고 싶은 일이 하나도 없는 자신에게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묻는 어른들이 너무 싫은 평범한(!) 중학생이다. 까마득한 미래를 생각할수록 두렵고 불안할 뿐이니 아예 세상이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모루에게 어느 날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한여름에 눈이 내리는 걸로 모자라, 그눈이 녹기는커녕 점점 쌓여서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로 7년 동안 녹지 않는 눈이 계속 내렸고, 그동안 모루는 엄마를 여의고 하나 남은 혈육인 이모마저 실종되었다. 계속 내리는 눈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집 근처에 생긴 눈 소각장에 취업한 모루는 그곳에서 우연히 중학교 동창인 이월을 만난다. 가난한 모루와 달리, 유명 연구소의 높은 직책에 있는 아버지와 중학교 이사장인 새엄마를 둔 이월이 대체 왜 여기에 온 걸까. 어렵게 만난 모루와 이월은 힘들게 마음의 문을 열어 각자의 이야기를 꺼내게 되고, 그 결과 세상에서 가장 멀리 있는 듯 보였던 두 사람이 실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가장 닮은 존재란 걸 깨닫게 된다.
처음에 녹지 않는 눈이 계속 내린다는 설정을 상상했을 때는 그저 낭만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졌는데, 그 눈이 생물체의 피부에 닿으면 그 즉시 발진과 염증을 일으키고 수분을 흡수해 건조시킨다는 설정을 읽고는 끔찍하고 무서웠다. 소설의 설정일 뿐이지만, 실제로 수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비닐과 플라스틱 같은 물질들이 (녹지 않는 눈처럼) 지표면에 쌓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모루와 이월처럼 생존 외의 모든 것을 사치라고 느끼는 젊은이들이 나오지 않으란 법이 없다. 아니, 이미 그런 미래가 도래했는지도 모른다.
모루와 이월은 운좋게 서로를 만났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소설 속에서 사람들은 살기가 힘들어질수록 서로 돕기는커녕 남들을 차별하고 혐오하며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도 경제가 어려워지거나 팬데믹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인간의 이기심은 정당성을 얻고 부도덕과 불의가 활개를 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상황에서 나를 믿고 이해해줄 단 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소망은 꿈일까 욕심일까. 모루와 이월이 처한 상황을 안타까워하면서 (책을) 읽었는데, 다 읽고 나니 부럽다. 나에게도 모루와 이월 같은 사람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