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보는 마음
김유담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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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기혼 여성의 임신, 출산, 양육에 대한 소설은 잘 읽지 않는다. 비혼이라서 백 퍼센트 공감하기 어려운 이유도 있지만, 소설에 나오는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산후우울증을 겪거나 독박 육아를 하거나 남편 쪽 가족과의 문제로 괴로워하는 여성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는 탓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유담 작가의 소설집 <돌보는 마음>을 읽은 건,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출산을 하든 안 하든, 돌봄 노동은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비혼이기 때문에, 아이가 없기 때문에 하게 되는 돌봄 노동에 대한 생각도 있다. 시부모를 모실 부담은 없지만 내 부모를 온전히 나 혼자 돌봐야 한다는 걱정. 아이를 키울 책임은 없지만 내가 늙으면 아무도 나를 돌보지 않을 거라는 불안. 이런 것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온다. 


이 책에는 주로 여성들이 돌봄 노동을 하면서 겪게 되는 불편한 상황과 그로 인한 어려움을 그린 소설들이 담겨 있다. 작가는 실제로 임신과 출산, 양육을 경험하면서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소설의 배경도 산후조리원, 맘카페 등 현실의 공간들이 주로 나오고, 내용도 베이비 시터 구하기, 어린이집 정하기 등 구체적이고 생생한 문제들을 주로 다룬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 자주 떠올랐다. 좁게는 가족 내에서 딸이라는 이유로, 아내라는 이유로, 며느리라는 이유로 당하는 크고 작은 차별과 불합리를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그랬고, 넓게는 이러한 차별과 불합리가 한국 사회 전반에 일종의 관습 또는 문화로 자리 잡아 계승되는 현실을 포착했다는 점에서 그랬다. 


"미야, 큰엄마 말 들어라. 나 하나 불편하면 모두가 편하고 웃게 된다. 결혼해서 여자는 그런 마음으로 살면 되는 거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것 같지만 다 안다. 다른 사람들이 안 알아주면 부처님이라도 알아주신다." (<안(安)>, 65쪽) 


<안(安)>의 윤미는 결혼 후 매주 금요일 저녁이 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가빠지는 증상에 시달린다. 주말마다 시가에서 가족 모임을 치른 후 설거지를 하고 싱크대와 가스레인지를 깨끗이 청소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가의 살림을 돕느라 정작 살고 있는 집은 청소할 시간이 부족해 제대로 치우지 못할 정도다. 이런 어려움을 호소하면 남편은 앞장서서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자기 가족의 편을 들며 윤미를 탓한다. 


<돌보는 마음>의 미연은 마흔이 넘어 첫 딸을 낳은 후 복직 시점을 두고 고민하는 중이다. 미연이 다니는 직장은 최대 2년까지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데, 임신만 해도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직장 분위기상 육아휴직을 2년 쓰면 원래 팀으로 복귀는커녕 복직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래서 미연은 육아휴직 6개월 만에 복직을 결심하는데 아이를 맡아줄 베이비시터 구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베이비시터를 구해도 그가 제대로 아이를 돌보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집에 설치한 CCTV를 들여다보느라 업무를 볼 때에도 마음이 안 놓인다. 


"가사 업무까지 깔끔하게 가능한 15년 경력의 베이비 시터 월급으로 한 달에 240만 원은 많은 걸까, 적은 걸까. 미연은 그것을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월급 절반 이상을 시터 비용으로 지출해야 한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돌보는 마음>, 153쪽) 


"엄마, 아들한테는 이런 거 대놓고 해 달라고 못 하죠? 왜 마스크 구해 드리는 건 딸이나 며느리여야 해요?" (<특별재난지역>, 234-5쪽) 


그러나 <82년생 김지영>에 비해 이 책은 훨씬 덜 답답하고 어떤 대목에서는 통쾌함마저 느낄 수 있었다. 가령 <안(安)>의 윤미는 주말뿐 아니라 주중에도 시가로부터 호출을 받는 일이 잦아서 힘들다고 남편에게 하소연했다가 이런 말을 듣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저버릴 만큼 그 일이 그렇게까지 중요하니?"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을 느낀 윤미는 이런 말을 한다. "아니, 내 일을 포기할 정도로 너를 사랑하지 않아." 얼마 후 윤미는 이혼을 결정했고 큰엄마는 윤미에게 직접 편지를 쓸 만큼 윤미의 이혼을 말렸지만, "남의 집 맏며느리 역할만 하다가 좋은 날은 누려 보지도 못하고" 죽은 큰엄마를 보면서 윤미는 자신의 결정이 옳았음을 확인한다. 


<대추>의 결말도 대단하다. 폐암으로 입원한 외할머니의 병실을 찾은 '나'는 외할머니가 좋아하는 대추를 사드렸다가 당신네 집 대추보다 맛이 없다는 지청구를 듣는다. 손자(子)라는 이유로 외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한 외사촌 영석은 할머니가 먹고 싶어 하는 할머니네 집 대추를 따다 드리겠다고 약속한다.


이래서 어른들이 아들, 아들 하나보다 하고 감탄하는 '나'에게 영석은 이런 말을 한다.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대추를 기분 좋게, 맛있게 드시고, 그리고......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 손자 때문에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 하는 할머니와, 할머니를 간병하느라 고생하는 엄마를 위해 할머니가 하루라도 빨리 죽기를 바라는 손자. 이 둘, 아니 셋의 삼각관계는 생각할수록 기묘하고 서늘하다. 


<연주의 절반>은 기혼 여성들이 겪는 문제를 사실적으로 묘사함을 넘어 지향해야 할 상태를 보여준다. 출산 후 육아휴직 중인 민선은 우연히 동네 공원에서 입사 동기였던 연주를 만난다.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임신을 계기로 퇴사한 연주가 사고로 아들을 잃고 이혼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마음이 안 좋았다. 민선은 육아로 지친 자신을 대신해 아들 민찬을 돌봐주는 연주에게 고마우면서도, 연주가 민찬에게서 죽은 아들을 겹쳐보는 것 같아 불편함을 느낀다.


결국 둘의 사이는 틀어지지만, 이후 민선은 덴마크로 떠난 연주가 웹툰 작가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과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공여받아 출산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고 기뻐한다. 연주에게 다시 아이가 생겨서가 아니라, 연주가 스스로 원하는 삶을 선택하고 그것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때 비로소 민선은 연주에게 있어 단순한 직장 동료 이상인 '친구'가 된다. 


'돌보다'는 '돌아보다'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돌아보는 마음. 이미 본 것을 일부러 돌아서 다시 보는 마음의 기저에는 물론 사랑도 있겠지만, 사랑 말고도 다양한 감정이나 욕망이 있을 수 있다. 아마도 나는 앞으로 돌봄의 무게가 내 삶을 짓누를 때마다 이 소설집을 떠올리게 될 것이고, 그때마다 이 소설집에 나오는 인물들의 마음과 나의 마음을 견주어 볼 것 같다. 그때의 내 마음이 그저 사랑뿐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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