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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나무 숲 - 완전판
하지은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3월
평점 :

도입부부터 훅 빨려 들어 읽게 되는 소설이 있는가 하면, 처음엔 몰입이 잘 안되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정신을 못 차리고 읽게 되는 소설도 있다. 이 소설은 후자였다. 환상소설답게 생전 처음 들어보는 도시 이름과 사람 이름이 계속해서 나오는 초반부에는 소설의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낯설었던 이름들에 익숙해지고 인물들의 관계가 정리되면서 점점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나중에는 졸린 눈을 비비며 다음 장을 읽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야기의 무대는 음악의 도시 에단. 귀족 가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고요 드 모르페'는 아버지의 권유로 피아노를 배워서 에단 최고의 음악학교에 입학한다. 그곳에서 고요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유명한 '아나토제 바옐'과 만나고, 바옐의 지명으로 첼리스트 트리스탄과 트리오를 결성해 연습하면서 친구가 된다. 이후 바옐은 최고의 음악가를 뜻하는 '드 모토베르토'로 3회 연속 호명되며 음악가로서 큰 성공을 거둔다. 반면 고요는 주로 집에 머무르면서 연주 여행을 떠난 바옐이 에단에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사람들은 고요도 바옐 못지않은 실력자라며 야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활동해 볼 것을 권하지만, 고요는 성공한 연주자가 되는 것과는 다른 꿈이 있다. 그것은 바옐의 연주를 이해하는 유일한 청중이 되는 것. 그런 고요의 기다림에 답하듯 긴 연주 여행을 마친 바옐이 에단으로 돌아오고, 연주 여행으로 거액의 돈을 번 바옐은 연주자를 죽게 만든다는 불길한 소문이 있는 바이올린 '여명'을 구입한다. 사람들이 근처에 가는 것조차 꺼리는 '얼음나무 숲'과 관련이 있는 이 악기에는 대체 어떤 비밀이 있는 걸까.
자신의 음악을 이해해 줄 단 한 명의 청중을 찾는 바옐과 그의 단 한 명의 청중이 되고 싶은 고요. 한쪽은 상대를 경멸하고 질투하고, 다른 한쪽은 상대를 동경하고 숭배하는 불균형한 이들의 우정은,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때로는 옅어지고 종국에는 더 짙어진다. 바옐은 물론이고 고요조차도 찾으려고 노력했던 '단 한 명의 청중'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의 전율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연주나 음악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도, 결국에는 그 '단 한 명'을 위한 것이 아닐까. 그게 누구인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