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녜스 바르다의 말 - 삶이 작품이 된 예술가, 집요한 낙관주의자의 인터뷰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아녜스 바르다 지음, 제퍼슨 클라인 엮음, 오세인 옮김 / 마음산책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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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를 다루는 일을 오랫동안 해왔고 여전히 애정하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이미지를 다루는 일을 해보고 싶은 소망이 있다. 특히 영화는 텍스트를 이미지로, 영상으로 구현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한층 더 복잡하고 어렵고, 그래서 더 매력적인 일처럼 보인다. 그래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 그중에서도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에 대한 동경이 있고 호기심이 있다. 


아녜스 바르다의 인터뷰집 <아녜스 바르다의 말>을 읽은 것은, 그런 동경과 호기심에서이다. 사실 나는 아녜스 바르다의 엄청난 팬은 아니다. 그의 영화 중에 본 작품이라고는 2017년작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 유일하다. 이 책은 내가 아는 바르다의 영화 세계를 확인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이제부터 알아갈 바르다의 영화 세계를 미리 공부하기 위해 읽었다고 보는 편이 맞다. 실제로 이 책을 통해 바르다에 대해 알게 된 사실들이 매우 많다. 


첫째는 바르다가 처음부터 영화감독을 지망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1928년생인 바르다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고 졸업 후 사진가로 일했다. 그러다 우연히 영화계 인사들과 사귀게 되었고, 1954년 첫 영화 <라 푸앵트>를 발표하며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때까지 바르다가 본 영화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다섯 편이 고작이었다. (이때만 해도 영화는 지금처럼 주류 미디어가 아니었다.)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아서 영화 문법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 자신을 누벨바그의 대모로 만든 것 같다고 바르다는 말한다. 


둘째는 바르다가 자신의 삶에서 창작의 영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1972년 아들 마티외가 태어나면서 몇 년 간 집에서 육아에 전념하게 된 바르다는, 어머니가 되었다는 사실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구속하고 제한하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를 만들었다. 집 창고에 있던 90미터 길이의 전선을 꺼내 집안 콘센트에 꽂고 '탯줄'처럼 쥔 채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만든 영화 <다게레오타입>이 그것이다. 


2000년 작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도 바르다가 길거리에서 음식물을 줍거나 집어 드는 사람들을 본 경험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요즘에는 보기 힘든 광경이지만 과거에는 저런 사람들이 많았다는 생각을 하다가 어릴 적의 기억을 떠올렸고, 그 기억은 그를 장 프랑수아 밀레의 명작 <이삭 줍는 사람들>로 데려갔다. 이런 식으로 일상에서 어떤 광경을 보고 흥미를 느끼고, 흥미로부터 의미를 찾아내는 발상의 방식, 사고 과정이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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