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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싱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9
넬라 라슨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평점 :

우리는 타인의 삶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지난 주말 넷플릭스 영화 <패싱>을 보면서 나는 내가 흑인 여성의 삶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의 배경은 1920년대 뉴욕과 시카고. 백인과 유색 인종의 분리를 명시한 '짐 크로우 법'이 1960년대까지 효력을 발휘했다는 걸 알기에,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1920년대의 흑인들은 백인들보다 열악한 조건의 삶을 살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에선 달랐다. 물론 이 시대의 흑인들 다수가 백인들보다 열악한 조건의 삶을 살았던 건 맞다. 흑인들이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백인에게 폭행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는 것도 맞다. 하지만 극소수의 흑인들은 일부 백인들보다 안락한 삶을 살았다. <패싱>의 화자 아이린의 남편 브라이언처럼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가 되거나, 아이린의 옛 친구 클레어처럼 백인으로 '패싱'되는 경우에 그랬다.
영화의 여운이 너무도 강렬해서 원작 소설을 읽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그래서 읽게 된 소설은 영화 그 이상이었다. 주인공 아이린은 인종적으로는 흑인이지만 계급적으로는 중산층에 속한다. 의사인 남편 브라이언은 아이린으로 하여금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고 안락한 생활을 하게 해준다. 아이린 역시 남편과 두 아들을 보살피고 이따금 흑인 인권 단체를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어느 날 친정인 시카고를 방문한 아이린은 더위를 피해 들어간 호텔 카페에서 옛 친구 클레어를 만난다. 백인 남자와 흑인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클레어는 백인으로 보일 만큼 흰 피부와 누구라도 반할 만한 미모의 소유자다. 아이린은 클레어가 흑인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백인 남자와 결혼했다는 말을 듣고 모순적인 감정을 느낀다. 친구이자 같은 여성으로서 클레어가 무사히 결혼 생활을 영위하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흑인 혐오자인 남편에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 클레어에게 분노를 느낀다.
그로부터 2년 후 클레어가 뉴욕으로 찾아오면서 아이린의 평온한 일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흑인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을 내비치는 클레어에게 아이린은 같은 흑인으로서 연민을 느끼면서도, 혹시라도 흑인 혐오자인 클레어의 남편이 클레어가 흑인들과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될까 봐 - 결국에는 클레어가 흑인이라는 사실을 들킬까 봐 - 걱정한다. 또한 누가 봐도 매력적인 클레어가 자신의 남편과 가까워질까 봐 경계하는 마음도 든다.
<패싱>은 이런 식으로 인종 차별이 어떤 식으로 개인들의 삶을 힘들게 했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인 동시에, 같은 인종 안에서도 젠더, 계급, 섹슈얼리티 등의 면에서 때로는 다수자 또는 소수자성을 가질 수 있음을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나아가 한 사람의 인종, 젠더, 계급, 섹슈얼리티 등의 요소를 모두 제거했을 때 그는 과연 무엇인가(혹은 무엇이 될 수 있는가)를 묻는 소설로도 읽혔다. 아이린과 클레어가 다른 입장, 다른 상황에서 만났어도 그와 같은 우정(혹은 애증)의 관계를 맺었을까. 무엇이 우리를 우리가 되게(혹은 될 수 없게) 만드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