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영화 없는 날 - 차별을 넘어 차이를 잇는 페미니즘 영화관 쓰담문고 3
김수진.김시원.황고운 지음, 손희정 해설 / 서해문집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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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볼 영화가 많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매주 새롭게 개봉하는 영화가 이렇게 많은데도, 일부러 극장에 가지 않아도 OTT 서비스를 이용해 언제 어디서나 얼마든지 영화를 볼 수 있는데도 말이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변한 건 영화가 아니라 나다. 예전에는 흔히 말하는 알탕 영화, 조폭 영화도 잘 봤다. 관객이 천 만 이상 들었다고 하면 아무 생각 없이 보기도 했다. 그 때마다 왠지 모르게 불편하고 찜찜한 이유가,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차별과 혐오 정서라는 걸 알게 된 이후로는 볼 영화가 많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싫으냐고? 그럴 리가... 


이 책은 성평등 교육을 실천하는 현직 교사 3인이 함께 썼다. "다름이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며, 교실 안과 학교 밖에서 그 길을 찾다 영화를 만났다."라고, 김수진, 김시원, 황고은 저자는 밝힌다. 책에는 나처럼 볼 영화가 많지 않아서 고민인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영화가 소개되어 있다. <벌새>, <우리집>, <툴리>, <당갈>, <야구소녀>, <아이 필 프리티>, <피의 연대기> 등 여성 감독이 만든 영화, 새로운 여성 캐릭터의 서사를 그린 영화, 성별에 대한 편견을 깨트리는 영화,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시선에 의문을 던지는 영화 등이다. 


현직 교사들이 공저한 책답게, 영화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과 그에 대한 교사들의 피드백이 실린 점이 좋았다. 여자로 태어났지만 여자로 보이는 게 불편한 소녀 미카엘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톰보이>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학생들과 성별 이분법에 관해 토론한 내용을 들려준다. '여자는/남자는 ~ 하다'는 생각에 익숙한 학생들에게 저자는 자신을 잘 드러내는 성격이나 생김새를 나열해 보게 했다. 파랑을 좋아한다, 핑크를 좋아한다, 운동을 좋아한다, 책을 좋아한다 등. 그러고 나서 나와 같은 특징을 가진 친구들을 찾도록 했더니, 그 중에는 여자도 있고 남자도 있었다. 여자만의 특징이나 남자만의 특징 같은 건 없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한 것이다.


1960년대 미국항공우주국 '나사(NASA)'에서 활약한 세 흑인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히든 피겨스>를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학생들과 함께 일상 속 불편을 개선한 과학자를 발견하는 시간을 가진 경험을 들려준다. 과학자 하면 대부분 남성일 것 같지만, 와이파이와 수정액, 자동차 와이퍼 등을 발명한 과학자는 모두 여성이며, 음식물 쓰레기 건조기를 발명한 사람은 가사노동 경력 20년 차의 전업주부라는 사실을 알고, 학생들도 놀랐지만 나도 무척 놀랐다. 이 밖에도 영화를 통해 현실에 남아 있는 차별과 편견, 혐오를 발견하고 이를 재생산하지 않기 위해 교사와 학생들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 좋았다. 영화평론가이자 페미니스트인 손희정 선생님의 해설이 덧붙여져 있어서 시네페미니즘(시네마+페미니즘)을 공부하기에도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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