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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인 타임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20년 1월
평점 :

영국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 영화 <차일드 인 타임>의 원작 소설을 읽었다. 영화가 2017년에 개봉했기 때문에 소설이 그보다 몇 년 전에 나왔을 줄 알았는데, 무려 1987년에 나왔다고 해서 놀랐다. (그럼 이언 매큐언은 대체 언제 데뷔한 거야? 찾아보니 1975년이다...!) 그래서 그런지 작품 자체는 발표된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참신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완성도가 높은데, 과거의 과학 기술 수준이 지금과 비슷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 작품 곳곳에 나온다. 마트에 CCTV가 설치되어 있었더라면 아이를 그렇게 황망하게 잃어버리지는 않았을 테고, 스마트폰이 있었더라면 등장인물들이 서로 연락을 주고받기가 좀 더 수월했을 텐데...
이야기는 아동문학 작가인 스티븐이 어린 딸 케이트를 마트에서 잃어버리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아이를 잃어버린 부부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로는 김영하 작가의 단편 <아이를 찾습니다>가 있는데, <차일드 인 타임>은 그보다 훨씬 복잡한 내용을 다룬다. 딸 케이트를 잃어버린 후, 스티븐과 아내 줄리는 케이트의 부재를 견딜 수 없어서 별거를 택한다. 혼자가 된 스티븐은 영국 정부로부터 제안받은 아동 보육에 관한 위원회 일도 하고 차기작 집필도 해보지만 잘되지 않는다. 이 와중에 자신을 아동문학 작가로 만들어준 출판사 사장이자 촉망받는 정치인인 친구 찰스가 모든 사회적 지위를 내려놓고 은퇴하겠다고 선언한다.
처음에 스티븐은 찰스의 은퇴를 충동적인 결정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찰스는 원래의 생활로 돌아오지 않고 과거의 자신, 정확히는 과거의 자신이 원했던 자신의 모습이 된다. 스티븐은 그런 찰스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지만,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사람마다 자신의 시간이 있고 그것은 외부에서 함부로 간섭하거나 통제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외부에서 억지로 간섭하거나 통제할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도...) 나아가 스티븐은 과거의 어머니가 미래의 스티븐을 만났던 것처럼, 언젠가는 자신도 케이트를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믿게 된다. 시간은 결코 직선적으로 흐르지 않고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경험하지도 않는다는 깨달음은, 스티븐에게 다시 삶을 시작할 용기를 준다.
어떤 사람의 눈에는 스티븐이 스스로 희망 고문을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영원히 사라진 것이 아니고, 영원히 사라졌다고 해서 다시 만날 수 없는 게 아니라고 믿는 마음을 무의미한 희망이나 미련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인간의 앎은 아직 완전하지 않으므로,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믿는 편이 오히려 더 현명한 게 아닐까. 평행우주나 영원회귀 같은 어려운 말은 잘 모르지만, 진리는 결코 하나가 아니고 인간은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을 산다는 명제에는 동의한다. 이 소설이 전하는 주제도 같은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