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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정세랑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6월
평점 :

정세랑 작가의 첫 여행 산문집이다. 2012년부터 9년에 걸쳐 집필한 책으로, 여행지는 미국 뉴욕, 독일 아헨, 일본 오사카, 대만 타이베이, 영국 런던이다. 첫 여행지인 뉴욕으로 떠날 때만 해도 저자는 지금처럼 책만 냈다 하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는 인기 작가가 아니었다. 낮에는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밤에는 소설을 써서 투고하는 생활은 고단했고 보람도 없었다.
결국 저자는 출판사를 그만두고 소설에 '올 인' 하기로 결정했다. 때마침 뉴욕에서 유학 중이던 친구가 손짓을 했다. 돈도 없고 직업도 없는 서른 직전의 싱글 여성이 뉴욕에 간다니. 그때는 미친 짓 같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너무 잘한 선택이었다. 한 달 동안 뉴욕의 미술관과 박물관, 서점 등을 둘러보고, 혼자서 걷고 글 쓰고 생각하며 저자 안에 쌓인 것들이 결국 훗날 저자가 쓴 소설들의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보고 먹고 마신 것들이 주(主)인 책이지만, 세심한 관찰과 진지한 성찰이 담긴 대목도 많다. 미국과 유럽을 여행할 때 빈번하게 경험한 인종차별과 캣콜링에 관한 이야기도 있고, 관광이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환경 파괴와 자원 낭비에 관한 언급도 있다. 미술에 대한 조예가 깊어 보여서, 언젠가 미술을 주제로 책을 한 권 써주셨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행지에서의 경험이 <시선으로부터> 같은 작품에 어떤 식으로 반영되었는가 하는 후일담도 좋았다. 런던이 배경인 영화를 봤을 뿐인데 이벤트에 당첨되어 선물로 받은 왕복 항공권으로 런던에 다녀온 이야기는 저자의 소설 도입부처럼 신기하고 흥미진진했다. 찰스 디킨스, 아서 코난 도일 같은 유명 작가들과 관련이 있는 장소에 갈 때마다 그곳의 벽을 만지며 문운을 빈다는 이야기도 좋았다. 부디 오래오래 쓰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