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 에세이&
김현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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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게 거기서 거기인 것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알게 해주는 점이 에세이라는 장르의 매력이 아닐까. 황정은 작가의 에세이집 <일기>를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김현 시인의 에세이집 <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를 읽으며 다시 한번 에세이가 가진 마법 같은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어느 날 아침 저자가 여느 때처럼 좌변기에 앉아 시집을 읽으며 배에 힘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제 먹은 막걸리 두 통을 떠올리며 다음번에 먹을 막걸리를 정하는 흐뭇한 시간. 여기까지만 보면 평범한 사십 대 남성의 아침 일과 같지만, 책장을 조금 더 넘기면 그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에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가족이나 이웃과 솔직하게 대화를 나눌 수 없다거나, 신혼부부 주택 청약이나 은행 대출처럼 이성애자 부부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이익들로부터 당연하게 배제되는 일 등. 


한국의 법과 제도, 문화가 인정하지 않는 성적 지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살 곳을 구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사람들에게 번번이 거짓말을 해야 하는 삶을 사는 것이 차별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해 준 친구들과 내가 사랑한 친구들을 떠올리며 "산다는 건 분명히 죽음보다는 작고 가벼운 행복"이라고 쓸 만큼 사랑으로 충만한 저자의 마음을 나도 닮을 수 있을까. 삶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질 때마다 저자의 사랑을 떠올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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