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 - 시인이 보고 기록한 일상의 단편들
최갑수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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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기 힘든 시절이 길어지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날 기회만이 아니다. 평소라면 출근해야 할 시간에 늘어지게 자고 평소라면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에 밤거리를 누비는 즐거움. 별생각 없이 들어간 식당이 의외로 맛집이었다거나 어쩌다 말을 건 사람이 너무나 친절해서 그것만으로도 여행이 근사해지고 완벽해진 것만 같은 기쁨. 기다리는 버스는 오지 않고, 힘들게 찾아간 숙소가 예상보다 별로여도 '괜찮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여유. 이런 것들을 가장 극적으로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여행이었음을 새삼 깨닫고 아쉬워하는 요즘이다. 


나처럼 여행하고 싶지만 여행할 수 없어서 몸과 마음이 근질근질한 독자들을 위한 책이 나왔다. <밤의 공항에서>, <잘 지내나요, 내 인생>,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등의 여행책을 쓴 20년 경력의 여행작가 최갑수의 신간 <오래전부터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이다. 이 책에는 베테랑 여행작가이자 1997년 '문학동네'를 통해 등단한 시인이기도 한 저자가 그동안 여행을 하면서 찍은 사진들과 그에 관한 추억에 대해 쓴 시와 짧은 글이 실려 있다. 


책을 펼치고 목차를 넘기면 비행기 안에서 찍은 하늘과 바다 사진이 보인다. 끝이 없을 듯 보이는 바다를 건너 저자가 도착한 곳은 열대의 섬, 유럽의 소국,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 등 다양하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전혀 유명하지도 않았지만, 저마다 나름의 개성이 있고 멋이 있었다. 누군가는 기타를 끝내주게 잘 치고, 누군가는 캐리커처를 끝내주게 잘 그렸고, 누군가는 주어진 재료로 뚝딱뚝딱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다. 그들의 '평범한' 재주가 머나먼 외국에서 온 이방인의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는 걸 그들이 알았기를 바란다. 


여행을 하면서 만난 것은 새로운 풍경, 새로운 사람만이 아니다. 너무 오래되어서 폐차 직전인 차, 몇백 년은 버틴 것처럼 보이는 건물 등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것들을 마주칠 때마다 저자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만든 것들은 저렇게도 불완전하고 유한한데, 산과 바다, 돌이나 바람처럼 자연이 만든 것들은 어쩌면 저렇게 완벽하고 영구적일까.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부자인 사람도 가난한 사람도, 자연 앞에선 똑같이 약하고 한계가 있는 존재임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는다. 이런 생각들을 할 수 있는 여행. 언제쯤 다시 떠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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