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없는 기분
구정인 지음 / 창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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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절한 아버지가 고독사한 상황과 그 이후의 심경에 대해 그린 만화다. 혜진의 아버지는 돈도 없고 직업도 없으면서 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바람까지 피웠다. 결국 어머니와는 이혼했지만 딸들과의 인연까지 끊어진 건 아니었는데, 나중에 아버지가 혜진과 혜진의 남편에게까지 손을 벌리려고 하면서 혜진은 아예 의절을 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고독사했다는 전화를 받고 혜진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다. 장례식에 온 사람들은 혜진의 사정도 모르고 혜진을 위로하고, 혜진의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혜진에게 한 소리씩 한다. 장례식이 끝난 후 혜진은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 원래 상태로 돌아가기는커녕 점점 더 깊은 우울감과 무기력증에 빠진다. 마음은 어서 일도 해야겠고 남편과 딸에게도 잘해주고 싶은데, 하루 종일 누워서 울기만 하고 남편과 딸에게는 화만 내는 일상이 이어진다. 


슬프거나 화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쁘거나 후련한 것도 아닌 기분을 작가는 '기분이 없는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오랫동안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나도 '기분이 없는 기분'을 느낀 것 같다. 이제 더는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그렇다고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하다고는 할 수 없는 기분이었달까.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걸 두려워하는 이유는 사랑 후에 찾아올 미움이라는 감정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미워하지 않기 위해 억지로 좋아하는 척을 할 수는 노릇이고... 


우울이라는 감정은 자책과도 관련이 깊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은 남을 원망해야 하는데, 남을 원망해도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자기를 탓하는 마음. 자기를 탓하는 사람은 사실 착한 사람인데 이런 사람들은 우울증에 걸리고 남 탓하는 사람들은 건강하게 잘 사는 것 같다. 뒤죽박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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